항목 ID | GC004004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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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克齋先生遺集 |
영어의미역 | Posthumous Works of Master Geukjae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문헌/단행본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가좌동 900[진주대로 501] 경상대학교 문천각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한갑진 |
성격 | 한문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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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인물 | 김황(金榥)|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 |
저자 | 극재(克齋) 하헌진(河憲鎭) |
편자 | 하우근(河宇根) |
간행연도/일시 | 1963년 |
권수 | 4권 |
책수 | 2책 |
완전성 | 완전본 |
판종 | 연활자본(鉛活字本) |
가로 | 19.1㎝ |
세로 | 28.9㎝ |
장정법 | 선장(線裝) |
어미 | 상내향(上內向)|엽화문어미(葉花紋魚尾) |
반곽크기(가로) | 13.4㎝ |
반곽크기(세로) | 19㎝ |
행수 | 10행 |
한 행의 자수 | 20자 |
소장처 | 경상대학교 문천각 |
소장처 주소 | 경상남도 진주시 가좌동 900[진주대로 501] |
[정의]
조선 말기의 유학자 하헌진(河憲鎭)[1859~1921]의 유집(遺集).
[개설]
하헌진의 호는 극재(克齋)이고 자(字)는 맹여(孟汝)이다. 동료(東寮) 하재문(河載文)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행동에 법도가 있고 말과 글이 편하면서도 매력이 있어 원근의 유학들이 존경하였다. 그는 ‘극복(克復: 克己復禮의 준말)’을 삶의 좌표로 삼아 매사에 극진히 임하였으며, 김황(金榥) 등과 함께 면우(俛宇) 곽종석(郭鐘錫)에게 출입하여 문하생으로서 ‘예(禮)’를 묻고 배웠다.
[편찬/발간경위]
『극재선생유집』은 하헌진의 사후 40여 년이 지난 뒤, 손자인 하우근(河宇根)이 할아버지의 업적이 망실됨을 안타까워하여 집안에 소장되어 전해오던 극재의 시문을 모아 1963년 유집으로 엮어 간행한 것이다.
[구성]
『극재선생유집』은 4권 2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
1권에는 1957년 김황이 쓴 권두서가 실려 있고, 하헌진이 곽종석에게 출입하면서 향음례(鄕飮禮)의 ‘예(禮)’자로 지은 시와 함께 100여 수가 넘는 시들이 실려 있다. 하헌진의 시는 진주 인근의 명승을 유람하면서 그 감회를 노래한 것이 많은데,「대원동구(大源洞口)」, 「숙대원사(宿大源寺)」. 「천왕봉(天王峰)」, 「성모사(聖母祠)」, 「숙삼천포(宿三千浦)」 등으로 조선 말 진주 인근의 명승지 풍광을 엿볼 수 있다.
2권에는 곽종석에게 보낸 서신 6편과 함께 그와 교류했던 인물들의 서신 60여 편이 실려 있다.
3권에는 한우희(韓友希) 등이 두방재(斗芳齋)에서 『주자어류(朱子語類)』를 읽고 『주어정수(朱語精粹)』라는 책을 지었을 때 붙인 서문과 「권회언자서(權會彦字序)」가 실려 있다. 그리고 기문(記文) 2편, 「지명당선생문집발문(知命堂先生文集跋文)」 등이 실려 있으며, 명(銘) 1편, 고유문(告由文) 3편, 상량문(上樑文) 2편, 제문(祭文) 8편, 애사(哀詞) 2편, 가장(家狀), 행장(行狀) 및 묘표(墓表)가 각 1편씩 수록되어 있다.
4권에는 부록으로 조병규(趙昞奎)가 쓴 만사(挽詞)와 극재선생제문, 행장, 묘지명, 묘갈명(墓碣銘), 유집발(遺集跋)등이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극재선생유집』은 조선 말기 향촌 유학자의 많은 시문을 담고 있어 문학자료 및 향토사료적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