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28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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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桂敎 |
영어음역 | Jeong Gyegyo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태용 |
[정의]
조선시대의 문인.
[가계]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은철(殷喆), 호는 퇴암(退庵). 진사(進士) 정광룡(鄭光龍)의 아들이다.
[생애]
진주 용암에 살았다. 『증보 진양속지(增補 晋陽續誌)』에 "어버이를 섬김에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아니하였다"고 한다. 아버지가 일찍이 들로 가다가 고인(雇人)이 피를 뽑는 것을 보고 돌아와서 정계교에 말하기를 "고인이 벼를 뽑고 있었다"고 하므로 정계교가 "벼가 아니라 피입니다"라 하고는 피와 벼를 확실하게 구별하기 위하여 뜰 가운데에 피를 심고 이삭이 피어나기를 기다려서 벼가 아니고 피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런 일들은 어버이의 뜻을 기쁘게 해드리는 데 있었다. 밤에는 일용행사(日用行事)를 하나하나 모조리 고하였고 어버이가 잠들기를 기다려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