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3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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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羽良影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2-8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오정윤 |
성격 | 회화|초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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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미상 |
서체/기법 | 비단 채색 |
소유자 | 정구열 |
관리자 | 정구열 |
문화재 지정번호 |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
제작 시기/일시 | 조선 후기 - 정우량 영정 제작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6년 12월 18일 - 정우량 영정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정우량 영정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재지정 |
현 소장처 | 정구열[개인 소장]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2-81 |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정우량의 영정.
[개설]
정우량(鄭羽良)[1692~1754]은 조선 숙종(肅宗) 때 판돈령부사(判敦寧府事)를 지낸 정수기(鄭壽期)의 장남으로, 호는 학남(鶴南)이며 본관(本貫)은 영일(迎日)이다. 1723년(경종 3) 증광문과(增廣文科)에 합격한 후 대사성, 좌승지, 이조 판서, 우의정을 역임했다. 그의 글씨로는 개성의 계성사비(啓聖祠碑)가 남아 있고, 인천광역시 남동구 연수동에 있는 아버지 정수기의 묘에는 그가 지은 신도비(神道碑)가 있다.
[형태 및 구성]
정우량 영정은 살색의 대나무 발을 배경으로 쌍학흉배(雙鶴胸背)와 서대(犀帶)를 갖춘 관복으로 정장하고, 호피를 걸친 교의자(交椅子)에 반우향으로 앉은 전신 교의 좌상이다. 오사모(烏紗帽)는 높고, 사모 날개는 다소 좁고 길면서 좌우의 길이를 다르게 묘사하여 반우향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잘 전달하고 있다. 녹포(綠袍)의 단령(團領)[깃을 둥글게 만든 공복]은 다소 직선적인 필선으로 명쾌하게 표현하고, 옷 주름 옆에 명암을 넣어 입체감을 나타냈다. 의답(椅踏)과 교의자 받침대는 거의 통일된 평행사선 투시법으로 상당히 안정적으로 표현되어 바닥의 돗자리 위에 놓여 있는 듯한 시각적 인상을 자연스럽게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징]
측면향(側面向)인 인물의 얼굴 부분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정면향 좌우 대칭 구도이며, 세밀한 복식 표현으로 옷 주름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기법을 구사한 그림이다. 색채는 적(赤)·황(黃)·청(靑)의 3채(彩) 및 백(白)·흑(黑)의 다섯 가지가 주축을 이루며, 수용성 물감을 아교액과 혼합하여 진한 색채로 만들어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17세기의 평면적인 초상화와 18세기 후반의 시각적 사실성이 강조된 초상화의 중간쯤에 해당되는 18세기 중반경의 관복본(官服本) 초상화 양식을 보여 주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1986년 12월 18일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되였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