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3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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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鶴山城 |
이칭/별칭 | 남산 석성,남산 고성,미추홀 고성,비류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배성수 |
성격 | 성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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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산성|석축성 |
관련인물 | 김민선 |
크기(높이 | 1.5~4m |
둘레) | 577m |
면적 | 20,790㎡ |
소유자 | 인천광역시 |
관리자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청 |
문화재 지정번호 | 인천광역시 기념물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6년 12월 18일 - 문학산성 인천광역시 지정 지방 기념물 제1호에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문학산성 인천광역시 기념물 재지정 |
현 소재지 | 문학산성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산 27-1 외 |
출토 유물 소장처 | 인하 대학교 박물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인하로 100[용현동 253] |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있는 삼국 시대 산성.
[건립 경위]
문학산성의 건립 연대는 문헌 자료가 전하지 않고 발굴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아 잘 알 수 없다. 다만, 문학산성 안팎에서 삼국 시대 백제 토기 조각이 발견되고 있으며 문학산 동쪽 구릉 지대에서 청동기 시대 주거 유적이 발견되었다. 따라서 문학산 일대에 청동기 시대 이전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것은 확실하며, 문학산 주변에서 초기 백제의 타날문[두드림무늬] 토기 조각이 많이 확인되는 것으로 미루어 삼국 시대에도 대규모의 주거지가 분포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1997년 인천광역시에서 실시한 문학산성 지표 조사와 2002년 인하 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문학산 일대 문화유적 지표 조사에서 수습된 토기와 기와의 조각들은 대개가 삼국 시대 후기와 통일 신라 시대의 것이다. 그 중에서 삼국 시대 초기 백제 토기 조각들도 적은 수가 수습되기도했다. 이를 근거로 볼 때 산성을 쌓은 시기를 삼국 시대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추측할 수 있다.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산성에서 수습된 유물로 미루어 문학산성은 삼국 시대에 삼국 간의 영토 분쟁이 치열했을 당시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실한 점은 삼국 시대에 이미 문학산 주변에는 대규모의 주거지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학산성과 여기서 발견된 출토 유물들은 백제 건국기 비류(沸流)[?~?]의 세력이 터를 잡았던 미추홀이 인천이었음과 삼국 시대 문학산이 서해안의 중요 요충지였음을 확인해 주는 자료들로서 가치가 있다.
한편, 문학산성은 조선 전기까지 성으로서의 기능을 유지했는데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는 주민들의 피난처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보이며, 임진왜란 때에는 인천의 사민(士民)들이 왜병을 격파하기도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임진왜란 때 인천 부사였던 김민선(金敏善)[1542~1592]이 주민을 이끌고 문학산성에서 왜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했고, 산성 안에는 김민선을 기리는 사당인 안관당(安官堂)이 있었다고 한다.
[위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에 있는 문학 터널 서쪽의 사모지 고개를 따라 조성된 등산로가 있고 이 고갯마루에서 문학산 정상 쪽으로 오르면 정상부에 군부대가 위치한다. 문학산성은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된 군부대의 안쪽에 있는데 그 남쪽으로 새롭게 조성된 등산로에서 남벽을 살필 수 있다.
[형태]
문학산성은 문학산의 정상부를 둘러싸고 있는 테뫼식[산 정상을 중심으로 성곽이 산의 7~8부 능선을 따라 거의 수평이 되도록 한 바퀴 둘러쌓는 방식] 석성(石城)으로, 처음 쌓을 당시에는 토성(土城)의 형태로 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둘레 577m의 소규모 석성으로 남북 간 길이와 비교하면 동서 간 길이가 더 긴 타원형 형태를 하고 있다. 성내에 우물 터가 남아 있었지만 1959년 미군 부대 건설 공사로 정상 부분을 깎았을 때 함께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또 동문과 서문 등 두 개의 성문이 있었는데, 각종 자료를 살펴보면 이중에서 동문은 군부대가 들어섰던 1959년까지 남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지만, 서문에 대한 자료는 남아 있는 것이 없어 이미 조선 시대에 훼손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성내 시설은 배수에 활용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수구 두 개만이 남아있다.
[현황]
1959년 미군 부대 건설 공사로 서벽의 대부분이 훼손되었고, 지금은 동벽, 남벽, 북벽의 일부만이 보존되고 있으나, 보존 상태는 좋지 못하다. 최근 등산로를 보수하면서 보존 상태가 양호한 남벽 일부 구간을 개방하였다. 1986년 12월 18일에 인천광역시 지정 지방 기념물 제1호에 지정되였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인천광역시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문학산성은 삼국 시대에 축조된 산성으로, 성안에서 출토되는 토기와 문학산 인근에서 출토되는 유물로 미루어 축조 시기를 삼국 시대 초기 백제의 성곽으로 볼 수도 있다. 이는 백제 건국기 비류의 근거지 미추홀이 인천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미추홀의 위치 비정에 중요한 단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