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4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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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世冑 |
이칭/별칭 | 제운(霽雲),제운(霽雲) 선생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상열 |
[정의]
조선 후기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인천도호부에서 활약하였던 문인.
[개설]
이세주(李世冑)[1626~1710]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 제운리에서 태어났다. 이세주는 학문을 숭상하여 환로(宦路)[벼슬길]에 오르지 않고 고향에 거주하면서 경학(經學)에 힘썼으며, 40세 이후 후진 교육에 전력을 다한 학자이다.
[가계]
본관은 부평(富平)이며, 호는 제운(霽雲)이다. 고려 시대 삼한 벽상 공신(三韓壁上功臣) 이희목(李希穆)의 19세손이다. 이조 참판에 추증된 이진재(李震載)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활동 사항]
이세주는 평생 학문에만 경진하였고, 40세 이후 후학 양성에 경주하였기 때문에 제운(霽雲) 선생이라 불렸다. 제운리는 부평 이씨의 세거지로서 이세주가 호를 제운이라 한 것도 마을 이름에서 연유한 것이다. 이세주의 문하에서 수학한 학생이 수백 명에 이르렀는데, 그 중 과거에 오른 자가 세 사람이고, 성균관에 들어간 자가 10여 명이었으며, 주현(州縣)의 향시(鄕試)에 합격한 자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전한다.
[묘소]
이세주의 무덤은 인천광역시 연수구 동춘동 동막 해변에 있었으나, 1992년 이 지역의 개발에 따라 다른 곳으로 이장되었다. 이장 당시 이세주의 관을 덮었던 명정(銘旌)이 관 덮개에 그대로 박혀 있었으나,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이세주 묘 출토 관 덮개는 폭 80㎝, 길이 200㎝, 두께 5㎝이며 나무로 만들어 주칠(朱漆)을 하였다. 현재 인천광역시립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으며, 1994년 11월 4일 인천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6호로 지정되었다.
[상훈과 추모]
이세주는 1709년(숙종 33) 영의정 최석정(崔錫鼎)의 상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와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제수되었으며, 이듬해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제수되고 2대가 추영(推榮)되었다. 그리하여 이세주는 사은(謝恩) 차 입성(入城)하여 임금에게 예(禮)를 올렸는데, 이세주의 모습이 너무나 황홀하여 지켜보는 백관(百官)이 모두 지상 신선(地上神仙)과 같다고 하면서 감탄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