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430 |
---|---|
한자 | 姜綖 |
이칭/별칭 | 정경(正卿),청천(菁川)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오현숙 |
성격 | 문신 |
---|---|
성별 | 남 |
본관 | 진주(晉州) |
대표관직 | 봉교|사헌부 지평|사헌부 집의|공조 참의|인천도호부 도호부사|첨지중추부사 |
출생 시기/일시 | 1552년 - 강연 출생 |
활동 시기/일시 | 1590년 - 강연 증광 문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594년 - 강연 사헌부 지평·헌납·필선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600년 - 강연 홍문관 부교리·집의·보덕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602년 - 강연 우승지·좌승지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604년 - 강연 인천 도호부사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609년 - 강연 한성부 판윤 부임 |
몰년 시기/일시 | 1614년 - 강연 사망 |
부임|활동지 | 인천도호부 청사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매소홀로 553[문학동 343-2] |
[정의]
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정경(正卿), 호는 청천(菁川)이다. 아버지는 강사필(姜士弼)이며, 할아버지는 강온(姜溫), 증조할아버지는 강영숙(姜永叔)이다. 어머니는 정윤수(鄭允壽)의 딸이다. 아들은 강홍중(姜弘重)이다.
[활동 사항]
강연(姜綖)[1552~1614]은 1590년(선조 23)에 증광 문과에 급제하였다. 1593년(선조 26)에 봉교(奉敎)가 되었고, 이후 정언(正言), 병조 좌랑을 역임하였다. 1594년(선조 27)에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 헌납(獻納), 필선(弼善)을, 1595년(선조 28)에는 성균관 전적, 시강원 겸문학(侍講院兼文學)을 지냈다.
1599년(선조 32)에는 성균관 사성(司成), 사헌부 장령, 군기시 정(軍器寺正)을 거쳐 사헌부 집의(執義)에 이르렀고 1600년(선조 33)에는 홍문관 부교리, 집의, 보덕(輔德)을 지냈다. 집의로 재직하던 중에는 장령이던 조익(趙翊), 윤황(尹滉)과 함께 임진왜란 후 복구 작업의 시급함을 들어 외방 수령직 가운데 비어 있는 곳은 경관(京官)으로 우선 충원할 것을 건의하였다.
1601년(선조 34)에는 승정원의 동부승지, 좌부승지를 역임하고, 1602년(선조 35)에는 우승지와 좌승지를 거쳐 1603년(선조 36)에 공조 참의가 되었다. 1604년(선조 37)에 인천도호부에 도호부사로 부임하여 이듬해 변민쇄환(邊民刷還)[변경으로 강제로 이주시킨 백성이 해당 지역을 벗어나 다른 곳에 사는 것을 찾아내어 원래의 변경으로 되돌려 보내는 것을 말함]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는 비변사의 장계로 파직되었다. 1606년(선조 39)에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올랐고, 1609년(광해군 1)에 한성부 판윤을 역임하였다. 이후 광해군(光海君)의 난정(亂政)으로 은퇴하여 독서와 저술로 여생을 보냈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 『청천 일기(菁川日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