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464 |
---|---|
한자 | 朴竪基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황은수 |
[정의]
조선 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주(仁州)의 지인주사(知仁州事)를 역임한 문신
[가계]
고려 말 내시(內侍) 전별장(前別將)을 지낸 박을재(朴乙材)의 아들이다.
[활동 사항]
박수기(朴竪基)는 고려 말 1377년(우왕 3) 진사시(進士試)에 3등(三等) 6위로 합격하였으나, 문과 급제 여부는 명확하지 않다. 조선 건국 직후인 1399년 서무를 총괄하고 간쟁(諫諍)을 맡아보던 관아인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에 속하여 기거주(起居注), 낭사(郎舍) 등을 역임했고, 1406년 5월에는 지인주사(知仁州事)로 부임하여 동년 윤7월까지 약 3개월간 복무하다가 사직했다.
박수기는 이후 태종(太宗) 연간에 순흥 부사(順興府使), 예빈시(禮賓寺)의 판예빈시사(判禮賓寺事), 사간원 우사간(右司諫) 및 좌사간(左司諫) 등을 역임했다. 주로 사간원의 언관(言官)으로 활동하여 극간(極諫) 때문에 벼슬이나 직위 따위가 낮은 자리로 떨어지거나 면직을 당하는 폄직(貶職)을 당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