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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의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0465
한자 朴義榮
이칭/별칭 거화(去華)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황은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본관 밀양(密陽)
대표관직 인천 부사|대사간
출생 시기/일시 1456년연표보기 - 박의영 출생
활동 시기/일시 1482년 - 박의영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508년연표보기 - 박의영 인천 부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509년 - 박의영 인천 부사 사직
몰년 시기/일시 1519년연표보기 - 박의영 사망
부임|활동지 인천도호부 청사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매소홀로 553[문학동 343-2]지도보기
유배|이배지 박의영 유배 - 충청도 문의
묘소|단소 박의영 묘소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주교동

[정의]

조선 전기에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자는 거화(去華)이다. 아버지는 예조(禮曺) 참의(參義)를 역임한 박미(朴楣)이고, 어머니는 진주 강씨로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를 역임한 강석덕(姜碩德)의 딸이다. 생원 정순언(鄭純彦)의 딸 하동 정씨를 처로 맞았으나 자식이 없어, 별좌(別坐) 김한신(金漢臣)의 딸을 후배(後配)로 맞았다.

[활동 사항]

박의영(朴義榮)[1456~1519]은 1474년(성종 5) 진사시에 합격했고, 1482년(성종 13) 알성시(謁聖試) 병과(丙科) 1위로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승정원(承政院) 정자(正字), 호조와 공조의 좌랑(佐郞)을 거쳐 사간원(司諫院) 헌납(獻納)이 되고, 1500년(연산군 6) 사헌부(司憲府) 집의(執義)가 되었다.

1504년 대사간(大司諫)이 되었으나, 갑자사화(甲子士禍) 당시 대사간이었음에도 이세좌(李世佐)의 죄를 말하지 않았다 하여 같은 해 3월에 충청도 문의(文義)에 중도부처(中途付處)되었다. 뒤에 풀려나 1508년 9월 인천 부사로 부임하여 1509년 12월까지 약 16개월간 복무하다가 모친상을 당해 사직하였다. 이후 중종 대에 호조·예조·병조·공조의 참의(參議)를 역임하였다.

[묘소]

박의영의 묘소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주교동 두응촌 묘역에 있다. 이곳은 밀양 박씨 규정공파(糾正公派)의 묘역이다.

[상훈과 추모]

박의영의 후손들은 박의영을 대간공파(大諫公派)의 파조(派祖)로 모시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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