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4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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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宋瑛 |
이칭/별칭 | 인보(仁寶)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오정윤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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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 남 |
본관 | 여산(礪山) |
대표관직 | 인천 도호부사|경기도 관찰사|동지중추부사 |
활동 시기/일시 | 1469년 - 송영 허통으로 출사 |
활동 시기/일시 | 1481년 - 송영 사헌부 장령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482년 - 송영 사헌부 지평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484년 - 송영 오포 추생어사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485년 - 송영 알성시 1등 장원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486년 - 송영 우부승지·좌부승지·우승지·좌승지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488년 - 송영 평안도 의주 별선위사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489년 - 송영 공조 참판·대사헌·동지중추부사·호조 참판·경기도 관찰사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491년 - 송영 이조 참판·영안도 순찰사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494년 - 송영 예조 참판 겸 좌빈객 역임 |
몰년 시기/일시 | 1495년 - 송영 사망 |
부임|활동지 | 인천도호부 청사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매소홀로 553[문학동 343-2] |
부임|활동지 | 의주 별선위사 - 평안도 의주 |
부임|활동지 | 경기도 관찰사 - 경기도 수원 |
[정의]
조선 시대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인보(仁寶)이다. 아버지는 송정수(宋玎壽), 할아버지는 송복원(宋復元), 증조할아버지는 송계성(宋繼性)이며, 외할아버지는 박인영(朴仁榮)이다.
[활동 사항]
송영(宋瑛)[?~1495]은 1469년(예종 1) 허통(許通)[조선 시대 서얼(庶孼)들에게 금고법(禁錮法)을 풀어 과거에 응시하도록 허락한 제도]으로 벼슬길에 나서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이 되었고, 1481년(성종 12) 사헌부 장령(掌令), 1482년(성종 13)에 사헌부 지평(持平)을 지냈다. 1484년(성종 15)에는 추생어사(抽栍御史)[조선 시대에 제비를 뽑아서 맡을 구역을 정하여 파견하던 어사]로 오포(烏浦)에 파견되었다.
송영은 내섬시(內贍寺)[조선 시대에 각 궁(宮)에 올리던 토산물, 이품 이상 벼슬아치에게 주던 술, 일본인·여진인(女眞人)에게 주던 음식과 필목(疋木) 따위를 맡아보던 관아]의 첨정(僉正)으로 있다 1485년(성종 16) 2월 인천 도호부사로 부임하였으나 같은 해 5월 을사(乙巳) 알성시(謁聖試)[임금이 문묘에 참배한 뒤 실시하던 비정규적인 과거 시험]에 1등(一等) 장원으로 급제하여 통정대부(通政大夫)[정삼품 문관의 품계] 병조 참의(兵曹參議)로 승진되어 이임하였다.
송영은 1486년(성종 17)에는 승정원(承政院)의 우승지(右承旨)·좌승지(左承旨)를 차례로 역임하였다. 이듬해 좌승지에 재직 시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신주(辛柱)의 전횡을 막게 하자는 청을 올려 이를 시행하게 하였다. 1488년(성종 19)에 평안도의 의주 별선위사(義州別宣慰使)로 파견되어 북관(北關)의 시정책을 건의하였다. 송영은 1489년(성종 20) 공조 참판(工曹參判), 대사헌(大司憲)이 되어서는, 전조(銓曹)[이조와 병조]에 승륙법(陞六法)[관리들의 관직 승급을 연공서열로 하지 않고 특별히 6품으로 바로 임명하던 제도]이 만연되어 지위와 녹을 축내는 용관(冗官)[실무에 필요 없는 관리]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이들에게 검직(檢職)[해당하는 벼슬의 정원 외에 임시로 증원할 때나 실제 사무를 보지 않고 이름만 가지고 있게 할 때, 그 벼슬 이름 앞에 붙여 이르던 말] 또는 군직(軍職)을 주어 퇴거시킬 것을 주장하였다. 송영은 같은 해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호조(戶曹) 참판을 거쳐 이듬해에는 경기도 관찰사를 지냈다. 계속해서 송영은 1491년(성종 21)에 이조(吏曹) 참판을 거쳐, 이듬해 영안도[함경도] 순찰사(永安道巡察使)가 되었으며, 1494년(명종 25)에 예조(禮曹) 참판으로 세자시강원 좌빈객(世子侍講院 左賓客)을 겸하였다.
송영은 성종 대에 관료의 정도를 걸었기 때문에 초창기 대간(臺諫)들이 주장한 작은 아버지 송현수(宋玹壽)가 임사홍(任士洪)과 함께 역모죄를 저지른 것에 대한 연좌율(緣坐律)[죄를 저지른 자의 일정한 친족 범위에 있는 사람들도 함께 적용시키는 죄형]에도 희생되지 않고 비교적 평탄한 벼슬 활동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