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488 |
---|---|
한자 | 申復淳 |
이칭/별칭 | 순지(淳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오정윤 |
성격 | 문신 |
---|---|
성별 | 남 |
본관 | 고령(高靈) |
대표관직 | 인천 부사|지중추부사 |
출생 시기/일시 | 1464년 - 신복순 출생 |
활동 시기/일시 | 1494년 - 신복순 문음으로 출사 |
활동 시기/일시 | 1532년 7월 - 신복순 인천 부사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533년 9월 - 신복순 인천 부사 퇴임 |
몰년 시기/일시 | 1541년 - 신복순 사망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506년 - 신복순 원종공신 일등에 책봉 |
부임|활동지 | 인천도호부 청사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매소홀로 553[문학동 343-2] |
[정의]
조선 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순지(淳之)이다. 아버지는 신준(申浚), 할아버지 고령 부원군(高靈府院君) 신숙주(申叔舟)[1417~1475], 증조할아버지 신장(申檣)이며, 외할아버지는 유수창(柳秀昌)이다.
[활동 사항]
신복순(申復淳)[1464~1541]은 여러 차례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급제하지 못하고, 1494년(성종 25)에 문음(門蔭)으로 의금부[중죄인을 신문하는 일을 맡아 하던 관아] 도사(義禁府都事)에 보임되어 출사한 후, 한성부(漢城府)의 중부 주부(中部主簿)에 제수되었다. 그 후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 장악원[조선 시대에 음악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아] 사평(掌樂院司評), 호조 정랑(戶曹正郞), 상의원[임금의 의복과 궁내의 일용품, 보물 따위의 관리를 맡아보던 관아] 첨정(尙衣院僉正), 장악원 정(掌樂院正), 상의원 정(尙衣院正) 등을 역임하였다. 1505년(연산군 11) 봄에 나라의 제사를 지낼 때 집행한 자들의 품계를 올릴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제수되었다.
신복순은 1506년(중종 1)에 중종반정 원종공신(原從功臣) 일등에 책봉되어 공조 참의(工曹參議)에 제수되었으며, 서반(西班)[무반(武班)을 달리 이르는 말]으로 옮겨 절충장군(折衝將軍)·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제수되고, 사복장(司僕將)을 겸하였다.
신복순은 1512년(중종 7)의 어머니 3년상 후 호군(護軍)[오위(五衛)에 속한 정사품 벼슬]에 임명되었다가 영흥 목사(永興牧使)를 시작으로 황주(黃州)·부평(富平)·안변(安邊)·여주(驪州)·회양(淮陽)·춘천(春川)·파주(坡州) 등의 외직을 역임하였다. 1532년(중종 27) 7월에서 1533년 9월까지 인천 부사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