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4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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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沈詻 |
이칭/별칭 | 중경(重卿),학계(鶴溪),의헌(懿憲)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오정윤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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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 남 |
본관 | 청송(靑松) |
대표관직 | 인천 부사|대사헌|이조 판서 |
출생 시기/일시 | 1571년 - 심액 출생 |
활동 시기/일시 | 1596년 - 심액 정시 병과 급재 |
활동 시기/일시 | 1644년 - 심액 도승지·대사헌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52년 - 심액 판의금부사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53년 - 심액 공조 판서 제수 |
몰년 시기/일시 | 1655년 - 심액 사망 |
부임|활동지 | 인천도호부 청사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매소홀로 553[문학동 343-2] |
묘소|단소 | 심액 묘소 -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
[정의]
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도호부 부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청송(靑松)이며, 자는 중경(重卿)이고, 호는 학계(鶴溪)이다. 아버지는 심우승(沈友勝), 친아버지는 심우후(沈友後), 할아버지는 심전(沈銓), 증조할아버지는 심달원(沈達源)이며, 외할아버지는 안용(安容)이다.
[활동 사항]
심액(沈詻)[1571~ 1655]은 1596년(선조 29) 병신(丙申) 정시(庭試)[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대궐 안에서 보이던 과거] 병과(丙科) 5위로 급제하였다. 1596년 출사하여 예문관 검열(藝文館檢閱)이 되었고, 1597년 왕세자의 교육을 맡아보던 관아인 세자시강원 설서(世子侍講院說書)·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 1598년에 함경도 경성부(鏡城府)의 판관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634년(인조 12) 11월에서 1635년(인조 13) 8월까지 인천 부사로 재임하였다.
심액은 1644년(인조 22) 도승지(都承旨)·대사헌(大司憲), 1647년(인조 25) 형조(刑曹)·예조(禮曹)·이조(吏曹)의 판서(判書)를 역임하고 청송군(靑松君)에 봉해졌다. 1652년(효종 3)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로, 기로소(耆老所)[조선 시대에 70세가 넘는 정이품 이상의 문관들을 예우하기 위하여 설치한 기구]에 들어갔으며, 이조 판서·좌참찬(左參贊)·공조(工曹) 판서를 역임하였다.
심액은 관직에 있을 때 군주의 치국의 도와 군덕(君德)에 대하여 논하는 상소를 여러 차례 하였으며, 1654년(효종 5) 군덕 수행을 위해 “신료들을 가벼이 보지 말 것, 형벌에 중정(中正)을 잃지 말 것, 직언 듣기를 싫어하지 말 것, 인심을 잃지 말 것, 취사(取捨)가 공명하지 않게 하지 말 것, 나태하고 소홀히 하지 말 것, 아첨하는 무리를 가까이하지 말 것, 이름만 있는 일은 하지 말 것, 사치를 숭상하여 제도를 무너뜨리지 말 것, 재물을 손상하여 백성을 곤궁하게 하지 말 것.”의 십무자(十無字) 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묘소]
심액의 묘소는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 있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