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5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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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楊萬古 |
이칭/별칭 | 도일(道一),감호(鑑湖),돈호(遯湖),비로도인(毘盧道人)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오정윤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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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 남 |
본관 | 청주(淸州) |
대표관직 | 인천 도호부사|통진 부사 |
출생 시기/일시 | 1574년 - 양만고 출생 |
활동 시기/일시 | 1610년 - 양만고 알성시 을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644년 11월 - 양만고 인천 부사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645년 7월 - 양만고 인천 부사 퇴임 |
몰년 시기/일시 | 1655년 - 양만고 사망 |
출생지 | 양만고 출생지 - 강원도 강릉시 |
부임|활동지 | 인천도호부 청사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매소홀로 553[문학동 343-2] |
[정의]
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자는 도일(道一)이며, 호는 감호(鑑湖)·돈호(遯湖)·비로도인(毗盧道人)이다. 아버지는 양사언(楊士彦), 할아버지는 양희수(楊希洙), 증조할아버지는 양제달(楊悌達)이다.
[활동 사항]
양만고(楊萬古)[1574~1655]는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1610년(광해군 2) 경술(庚戌) 알성시(謁聖試)[임금이 문묘에 참배한 뒤 실시하던 비정규적인 과거 시험]에 을과(乙科) 1위로 급제하였다. 1639년(인조 17) 군수품의 출납을 맡아보던 관아인 군자감 정(軍資監正)이 되어 시폐(時弊)[그 시대의 잘못된 폐단]를 논하는 「조진 설치 사책(條陳雪恥四策)」을 상소하고, 이어서 통진 부사(通津府使)를 지냈다. 1644년(인조 22) 11월 25일 인천 도호부사에 제수되어 같은 달 26일 부임하였고, 1645년(인조 23) 7월 7일 늙고 병들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음에 장계(狀啓)를 올려 교체되었다.
[학문과 저술]
양만고는 아버지 양사언의 영향을 받아 서예와 문장에 두루 능하였다. 글씨로 경기도 포천시에 「장령 정희등 묘표(掌令鄭希登墓表)」가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