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5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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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軾 |
이칭/별칭 | 화중(和仲)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오정윤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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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 남 |
본관 | 전주(全州) |
대표관직 | 인천 부사 |
활동 시기/일시 | 1472년 - 유식 식년시 병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518년 - 유식 인천 부사 부임 |
부임|활동지 | 인천도호부 청사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매소홀로 553[문학동 343-2] |
[정의]
조선 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화중(和仲)이다. 아버지는 유계동(柳季潼), 할아버지는 유의손(柳義孫), 증조할아버지는 유빈(柳濱)이며, 외할아버지는 정숙정(鄭淑精)이다.
[활동 사항]
유식(柳軾)[?~?]은 1507년(중종 2) 증광시(增廣試)에 을과(乙科) 6위로 출사하여 여러 고을의 수령을 역임하였다. 가는 곳마다 선정을 베풀어 관찰사로부터 선치수령(善治守令)으로 포상하여 줄 것을 바라는 품의가 여러 차례 조정에 올려졌고, 1508년(중종 3)에는 안관(安觀)·정인겸(鄭仁謙) 등과 함께 상으로 비단을 하사받았다. 1518년 인천 부사 재직 중 관찰사의 보고와는 달리 욕심이 많고 무능하다 하여 파직을 요청하는 대간의 탄핵소를 받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