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5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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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璠 |
이칭/별칭 | 온지(溫之),정정(貞靖)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오정윤 |
[정의]
조선 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도호부가 외향인 세조의 비 정희 왕후(貞熹王后)의 아버지.
[가계]
본관은 파평(坡平)이고, 자는 온지(溫之)이며 시호는 정정(貞靖)이다. 이름은 번(磻)으로 쓰기도 한다. 아버지는 윤승례(尹承禮)이며, 인천의 토성(土姓)인 인천 이씨 이문화(李文和)의 딸과 혼인하였다. 아들은 윤사분(尹士昐)·윤사윤(尹士昀)·윤사흔(尹士昕)이다. 세조의 장인이다.
[활동 사항]
윤번(尹璠)[1384~ 1448]은 음보(蔭補)[조상의 덕으로 벼슬을 얻는 일]로 출사하였고 1418년(태종 18) 판관(判官), 1424년(세종 6) 신천 현감(信川縣監)을 역임하였다. 1428년(세종 10) 군기시[병기ㆍ기치ㆍ융장ㆍ집물 따위의 제조를 맡아보던 관아] 부정(軍器寺副正)으로 있을 때 딸이 진양 대군(晉陽大君)[이후의 수양 대군, 세조]의 부인이 되어 이조 참의(吏曹參議)가 되었다. 윤번은 1432년(세종 14) 공조(工曹)와 이조의 참의가 되었다. 1434년(세종 16) 이조·호조(戶曹)의 참판(參判), 1438년(세종 20) 경창 부윤(慶昌府尹)을 거쳐 1439년(세종 21) 경기도 관찰사로 외직으로 나갔다가, 대사헌 등을 지냈다. 1440년(세종 22) 우참찬(右參贊)·공조 판서, 1446년 중추원(中樞院)의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가 되었다. 윤번은 1447년(세종 29) 풍병(風病)으로 사직하였으나, 병중에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를 가(加)하였다. 1448년 65세로 죽었다.
1459년(세조 5) 인천의 읍호가 윤번의 딸인 정희 왕후의 외향(外鄕)[어머니의 고향]이라는 이유로 인천군에서 인천도호부로 승격되었다.
[묘소]
윤번의 묘소는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당하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윤번의 영의정에 추증되고 파평 부원군(坡平府院君)에 추봉되었다. 시호는 정정(貞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