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5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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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泰兢 |
이칭/별칭 | 경증(景曾),노청암(老聽庵)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심효섭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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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 남 |
본관 | 남원(南原) |
대표관직 | 인천 부사 |
출생 시기/일시 | 1792년 - 윤태긍 출생 |
활동 시기/일시 | 1853년 10월 - 윤태긍 인천 부사 부임 |
추모 시기/일시 | 1884년 - 윤태긍 이조 참판 추증 |
추모 시기/일시 | 1888년 - 윤태긍 통정 대부에 가자 |
거주|이주지 | 윤태긍 거주지 - 경기도 용인 |
부임|활동지 | 인천도호부 청사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매소홀로 553[문학동 343-2] |
[정의]
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남원(南原)이며, 자는 경증(景曾), 호는 노청암(老聽庵)이다. 아버지는 윤응현(尹應鉉)이고, 김유원(金猷遠)의 사위이다.
[활동 사항]
윤태긍(尹泰兢)[1791~?]은 순조(純祖) 때 벼슬에 올라 1853년 10월에 인천 도호부사로 부임하였다. 일찍이 집안이 가난하였으나 성품이 강직하고 청렴하여 어려운 형편을 내색하지 않았다. 다섯 차례 벼슬에 있었지만 집에는 한 섬의 쌀도 들여놓지 않는 등 청백한 것을 근본으로 삼았다. 윤태긍의 사람됨을 알고 있는 대신이 그를 조정에 천거하려 하였으나 스스로를 남에게 굽히고 아첨하는 재주를 타고 나지 못했다고 하면서 거절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한다.
[상훈과 추모]
윤태긍은 1884년 이조 참판(吏曹參判)에 추증(追贈)되었으며, 1888년 통정대부(通政大夫)에 가자(加資)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