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5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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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晩榮 |
이칭/별칭 | 문신,춘장(春長),설해(雪海),『설해집(雪海集)』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심효섭 |
[정의]
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도호부에서 태어난 문신.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춘장(春長), 호는 설해(雪海)이며 임영 대군(臨瀛 大君)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이견철(李堅鐵), 할아버지는 이충작(李忠綽)이고, 어머니는 정응창(鄭應昌)의 딸이다.
[활동 사항]
이만영(李晩榮)[1604~1672]은 1636년(인조 13) 알성시에 장원 급제하여 문한관(文翰官)을 거쳐 감찰이 되었다. 1636년 동지사 서장관(冬至使 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644년 사헌부 장령(司憲府 掌令)에 제수되었다. 1648년 청주 목사로 재직 중 음주로 말미암은 추고(推考)로 유배를 당하였으며, 1651년에는 진향사(進香使)의 서장관이 되어 청나라에 다녀온 후 사간(司諫)이 되었다.
1654년 소현 세자(昭顯世子)[1612~1645]의 아들을 비호했다는 죄목으로 함경도 명천(明川)으로 유배를 당했으나 2년 후 벼슬이 환원되었다. 1659년 보덕(輔德)으로 재기용된 후 사간, 강원도 관찰사, 소결청 당상(疏決廳 堂上), 대사간(大司諫)을 역임하였다. 1671년(현종 12) 예조 참판(禮曹參判)으로 승진하였고, 그 해 사은부사(謝恩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72년 평안도 관찰사로 부임하였으나 재직 중 임지에서 죽었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 『설해집(雪海集)』이 있다. 1671년(현종 12) 인천 영종도 본섬의 백운산 기슭에 있는 구담사(瞿曇寺)에서 지은 이만영의 시가 『영종진 읍지(永宗鎭 邑誌)』에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