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5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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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文和 |
이칭/별칭 | 백중(伯仲),오천(烏川)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심효섭 |
[정의]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활동한, 인천광역시를 세거지로 한 인천 이씨(仁川 李氏)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이 인천(仁川)으며, 호는 오천(烏川). 평장사 이지저(李之氐)의 6대손이며, 전공판서(典工判書) 이심(李深)의 아들이다.
[활동 사항]
이문화(李文和)[1358~1414]는 1380년(우왕 6)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우정언(右正言), 우헌납(右獻納), 예문응교(藝文應敎) 등을 역임하였다. 이문화는 조선 개국 후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에 등용되고 1397년 좌승지(左承旨)를 거쳐 이듬해 도승지(都承旨) 겸 상서윤(尙瑞尹)을 지냈다. 이문화는 1399년 첨서의흥삼군부사(簽書義興三軍府事)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405년 예조 판서(禮曹判書), 1408년 호조(戶曹) 판서, 1409년 형조(刑曹) 판서에 각각 제수되었다. 1411년에는 개성 유수(開城留守)를 지냈으며, 1414년 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使)를 역임했다.
[묘소]
이문화의 묘소는 경기도 광주 경동에 있었으나, 1971년 충청남도 천안시 구성동 구곡등 건좌로 이장하였다. 동시에 이문화의 사당인 오천재(烏川齋)를 이곳으로 확장하여 이건하였다.
[상훈과 추모]
이문화는 사후에 영의정으로 추증되었고, 공도(恭度)라는 시호를 받았다. 또한 전라남도 장흥의 금계사(金溪祠), 대구광역시의 서계 서원(西溪書院), 경상남도 함안의 도천사(道川祠)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