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5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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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汝發 |
이칭/별칭 | 군실(君實),정익(貞翼),한흥군(韓興君)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심효섭 |
[정의]
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 지역에서 활동했던 무신.
[가계]
본관은 한산(韓山)이다. 자는 군실(君實). 아버지는 이목(李穆), 할아버지는 정사공신 한천군(韓川君) 이의배(李義培)이다. 어머니는 연안 김씨(延安金氏)로 김희온(金希溫)의 딸이다.
[활동 사항]
이여발(李汝發)[1621~1683]은 1651년(효종 2) 별시(別試) 병과(丙科) 330위로 무과에 급제한 뒤 비변사 낭관(備邊司郎官), 오위도총부 도사(五衛都摠府都事) 등을 역임하였다. 1653년 숙천 부사(肅川府使)로 부임하여,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어 칭송이 자자하였다고 한다. 이후 만포 첨사(滿浦僉使), 영흥 부사(永興府使), 장단 방어사(長湍防禦使), 충청도 병마절도사 등의 직을 거쳤다. 회령 부사(會寧府使)로 제수되면서 가선대부(嘉善大夫)의 위계에 올랐으며, 한흥군(韓興君)에 봉해졌다.
이여발은 1660년(현종 1) 삼도 통제사에 제수되고, 이어 함경도 병마절도사, 포도대장, 평안도 병마절도사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평안도 병마절도사 재임 시에는 성을 수축하고 병기를 정비하는 등 북방 수비에 만전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그 뒤 상국(相國)[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을 통틀어 이르는 말] 정태화(鄭太和)의 천거로 훈련대장(訓鍊大將)이 되었으며, 어영대장(御營大將), 비변사 제조(提調), 총융사(摠戎使) 등을 지냈다.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올라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가 되었다.
[묘소]
이여발의 묘소는 인천광역시 남동구 운연동에 있다.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에 박세당(朴世堂)이 찬하고, 유상운(柳尙運)이 쓴 신도비가 있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