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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0545
한자 李調
이칭/별칭 화보(和甫)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상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성주(星州)
대표관직 김포 현령|인천 부사
출생 시기/일시 1521년연표보기 - 이조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61년 - 이조 생원시 급제
활동 시기/일시 1594년 8월 15일연표보기 - 이조 인천 도호부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595년 8월 25일연표보기 - 이조 인천 도호부사 파직
부임|활동지 인천도호부 청사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매소홀로 553[문학동 343-2]지도보기

[정의]

조선 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도호부 부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성주(星州)이고, 자는 화보(和甫)이다. 아버지는 행군기시 주부(行軍器寺主簿)를 지낸 통훈대부(通訓大夫) 이사성(李思誠)이다.

[활동 사항]

이조(李調)[1521~?]는 서울에 거주하였고, 1561년(명종 16) 식년시(式年試)에 3등(三等) 38위로 합격하였다.

이조의 활동을 확인할 만한 기록은 거의 없다. 실록에 보이는 기사는 “김포 현령(金浦縣令) 이조는 병란이 일어난 뒤로부터 민병(民兵)을 모으고 군기를 정련(精練)하여 목숨을 걸고 지키면서 물러가지 않으니, 적이 감히 그 지역에 접근하지 못하였고 온전하였다. 비변사가 이 소문을 듣고 논상을 계청하니, 상이 당상(堂上)을 제수하도록 명하였다.”라는 기사만이 남아 있다.

이조는 1594년(선조 27) 8월 15일 인천도호부 부사에 부임하여 다음해 8월 25일 사간원(司諫院)의 계청(啓請)으로 파직되기까지 12개월을 복무하였다. 『인천부 읍지(仁川府邑誌)』에 파직 사유가 사간원의 계청이라고만 되어 있고 다른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명확한 사유를 알 수 없다.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벽지리의 밀양 박씨 가문에서 보관해 오던 유물인 「총마계 회도(驄馬契會圖)」를 보면 이조는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로 활동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총마계 회도」에 이조이사성의 아들이며 본관이 ‘성주’라고 표기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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