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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0548
한자 李秫
이칭/별칭 형선(亨仙)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상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본관 한산(韓山)
대표관직 공조 정랑|인천도호부 부사
활동 시기/일시 1531년 - 이출 식년시 진사 급제
활동 시기/일시 1535년 - 이출 별시 갑과에 장원
활동 시기/일시 1547년 12월 18일연표보기 - 이출 인천 도호부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548년 6월 10일연표보기 - 이출 인천 도호부사 파직
부임|활동지 인천도호부 청사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매소홀로 553[문학동 343-2]지도보기

[정의]

조선 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한산(韓山)이고, 자는 형선(亨仙)이다. 이색(李穡)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이운(李耘), 할아버지는 이인견(李仁堅), 증조할아버지는 이형증(李亨增)이고 외할아버지는 안우신(安遇臣)이다. 장인은 신연(申淵)이고 작은아버지는 이자(李耔)이다. 이출의 딸이 심극명(沈克明)의 어머니다.

[활동 사항]

이출(李秫)은 조선 전기에 활동한 문신으로서, 생몰년은 알 수 없다. 1531년(중종 26)에 신묘(辛卯) 식년시(式年試)에서 생원 2등 23위를 했고, 1531년 신묘 식년시 진사 2등 10위를 했다. 그리고 1535년(중종 30)에 을미(乙未) 별시(別試) 갑과 장원을 했다.

1543년(중종 38) 6월에는 공조 정랑으로 있으면서 사간원(司諫院)의 탄핵을 받았다. 그 이유는 이출이 개성부 도사로 있을 때 삼가지 아니한 사실이 많이 있었으니 육조 낭관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벼슬을 가를 것을 요청했으나 중종(中宗)이 “수령(壽齡)은 종실의 지친이니 그 녹을 잃게 할 수가 없다. 지난날의 파직으로 충분히 징계가 되었을 것이니 고칠 것 없다.”라고 하여 탄핵을 면하였다. 또 1543년 7월에는 사간원에서 군기시 첨정(軍器寺僉正)으로 있던 이출이 삼가지 않은 잘못으로 논박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곧 벼슬이 올라갔으니 매우 온당하지 않다는 이유로 탄핵하여 파직되었다. 이출은 1547년(명종 2) 12월 18일에 광흥창 수(廣興倉守)에서 인천도호부 부사로 부임하였으나 1548년(명종 3) 6월 10일에 파직되어 6개월을 근무했다. 파직 사유는 알 수 없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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