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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0558
한자 鄭東勉
이칭/별칭 덕중(德中)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상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본관 동래(東萊)
대표관직 인천 부사
출생 시기/일시 1762년연표보기 - 정동면 출생
활동 시기/일시 1824년 8월 28일연표보기 - 정동면 인천 부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829년 6월 24일 - 정동면 인천 부사 이임
몰년 시기/일시 1842년연표보기 - 정동면 사망
부임|활동지 인천도호부 청사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매소홀로 553[문학동 343-2]지도보기

[정의]

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동래(東萊)이고 자는 덕중(德中)이다. 아버지는 사간원(司諫院) 대사간(大司諫)을 지낸 통정대부(通政大夫) 정계순(鄭啓淳), 할아버지는 정석증(鄭錫曾)이다. 도정(都正)을 지낸 정동만(鄭東晩)은 형이고, 사서(司書)를 지낸 정동일(鄭東逸)은 동생이다. 이조 참판과 공조 판서를 지낸 정시용(鄭始容)이 아들이다. 경기도 하남시 교산동 68번지에 아버지 정계순의 묘가 있고, 1834년 이상황(李相璜)이 찬한 신도비가 남아 있다.

[활동 사항]

정동면(鄭東勉)[1762~1841]은 1798년(정조 22) 식년시(式年試) 일등(一等) 4위로 입격한 뒤 음관으로 출사하였다. 아버지 정계순은 평소 자신의 세 아들에게 벼슬길에 나가는 것을 경계하였다는 내용이 정계순의 신도비에 전한다. 정계순 자신도 음관으로 벼슬길에 나섰으나 검소하여서 가사(家事)에 얽매이지 않는 선정을 베풀었다.

실록에는 1822년(순조 22) 경상좌도 암행어사 김정균(金鼎均)의 서계에 치정을 잘못하였다며 다른 관리들의 이름과 함께 청도 군수 정동면을 탄핵하는 기록만이 보일 뿐이다. 또 다른 기록인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를 통해 관직 이동 상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814년 영희전(永禧殿) 참봉(參奉), 1815년 의영(義盈) 봉사(奉事), 1816년 의영 주부(主簿), 1816년 서부령(西部令), 1817년 부여(扶餘) 현감, 1821년 청도(淸道) 군수, 1823년 익위사(翊衛司) 익찬(翊贊), 1824년 인천 부사, 1829년 부사과(副司果), 익릉령(翼陵令), 1838년(헌종 4) 군자시(軍資寺) 정(正)의 관직을 거쳤다.

정동면은 1824년(순조 24) 8월 28일 인천 부사로 부임하여 1829년(순조 29) 6월 24일 임기 만료 때까지 59개월 동안 근무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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