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5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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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彦忱 |
이칭/별칭 | 중부(仲孚)│성은(誠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경화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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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 남 |
본관 | 청주(淸州) |
대표관직 | 인천도호부 도호부사 |
출생 시기/일시 | 1551년 - 한언침 출생 |
활동 시기/일시 | 1579년 - 한언침 식년시 식년 진사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590년 - 한언침 증광시 을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593년 - 한언침 형조 좌랑에서 파직 |
활동 시기/일시 | 1599년 - 한언침 인천 부사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599년 - 한언침 평양 서윤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04년 - 한언침 상의원 정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05년 - 한언침 신경희 사건에 연루되어 삭탈관직 |
부임|활동지 | 인천도호부 관아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매소홀로 553[문학동 343-2] |
[정의]
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지낸 문신.
[가계]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중부(仲孚), 호는 성은(誠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인천 부사를 지낸 한금(韓嶔)이며, 할아버지는 예조 좌랑(禮曹佐郞)을 지낸 한형신(韓亨信)이다. 아버지는 충의위(忠義衛)를 지낸 한박(韓璞)이며, 어머니는 김국평(金國枰)의 여식이다. 안절의 여식과 혼인하였다.
[활동 사항]
한언침(韓彦忱)[1551~?]은 1579년(선조 12) 진사시에 3등 21위로 합격하였으며, 1590년(선조 23)에 증광시(增廣試) 을과 7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1593년에 형조 좌랑(刑曹佐郞)에 부임하였으나, 사헌부(司憲府)에서 성품이 어리석고, 또한 관에서나 집에서나 행동이 추악하고 비루하여 낭관의 반열에 끼이게 할 수 없다는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1599년 인천도호부 도호부사에 임명되었으나, 이 또한 한언침을 탄핵하는 감사의 장계로 인해 곧바로 파직되었다. 이후 1599년에 평양 서윤(平壤庶尹), 1604년 상의원 정(尙衣院正)에 제수되었다. 이듬해 신경희(申景禧)가 재령 군수로 재직하던 중, 윤세침(尹世沈) 사건을 보고하면서 공명심으로 장계를 날조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한언침이 이에 연루되어 삭탈관직을 당하고 문외 출송(門外黜送)[죄지은 사람의 관작(官爵)을 빼앗고 도성 밖으로 추방하던 형벌]되었다.
한언침이 인천도호부 도호부사로 재직한 시기는 그리 길지 않다. 첨정(僉正)이었던 한언침은 1599년 2월 인천도호부 도호부사로 부임하면서 인천에 오게 되었다. 그러나 같은 해 3월 한언침을 탄핵하는 감사의 장계가 조정에 올라오고, 곧바로 파직되었다. 그가 1달여 동안 부임해 있던 인천도호부 관아는 현재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매소홀로 553[문학동 343-2]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