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5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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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汝溭 |
이칭/별칭 | 중안(仲安),십주(十洲)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경화 |
[정의]
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인천도호부를 재지 기반으로 하여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중안(仲安), 호는 십주(十洲)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한진(韓鎭)이며, 할아버지는 한수경(韓守慶)이다. 청천군(淸川君) 한준(韓準)과 중추부 도사(中樞府都事) 최정수(崔貞秀)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구곤원(具坤源)의 딸과 혼인하였다.
[활동 사항]
한여직(韓汝溭)[1575~1638년]은 1604년 유릉 참봉(裕陵參奉)에 제수되었으며, 1605년 생원시에 급제하였고, 1610년 식년시 갑과에 문과 급제하여 설서(說書)에 제수되었다.
1611년 세자시강원[왕세자의 교육을 맡아보던 관아] 사서(世子侍講院司書) 및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에 제수되었으며, 1613년에는 세자시강원 문학(文學), 사헌부 지평(持平) 등에 임명되었다. 하지만 1616년(광해군 8) 집권 세력의 압력으로 인해 빚어진 역모 혐의자 처리 사건인 해주 옥사(海州獄事)와 연관되어 투옥된 이래로 한동안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은거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 동부승지(同副承旨), 우부승지(右副承旨)에 제수되었으며, 1624년 경기우도 감사에 임명되어서는 경기도 관찰사로서 이괄(李适)의 난을 평정하였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가의대부(嘉義大夫)로 승진하였다. 이후 1627년에는 진향 겸 진위사(進香兼陳慰使)에 제수되었으며, 1628년 형조 참판(刑曹參判) 겸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에 재임할 당시, 유효립(柳孝立)의 모반 사건을 다스린 공으로 정2품에 올랐다. 그리고 같은 해 등극사(登極使)[중국의 황제가 새로 등극하였을 때에 이를 축하하기 위하여 보내던 사절]로 임명되어 명나라에 가서 황제의 칙서를 가지고 돌아왔다. 1633년 형조 참판(刑曹參判), 우참찬(右參贊)에 제수되었고, 1637년 대사헌(大司憲)과 원접사(遠接使)[조선 시대에 중국의 사신을 맞아들이던 임시 벼슬], 임금이 학문이나 기술을 강론ㆍ연마하고 더불어 신하들과 국정을 협의하던 경연(經筵)을 맡아보던 경연청(經筵廳)의 벼슬인 지경연(知經筵) 등을 역임하였으며, 이듬 해 예조 판서(禮曹判書)에 임명되었다.
한여직이 속한 청주 한씨(淸州韓氏) 가계는 한명진(韓明溍)의 후손이 중심이 되어 대대로 인천 지역을 기반으로 하여 그 가세를 유지하여 왔다. 특히 한언(韓堰)부터 부평의 계곡(桂谷) 일대를 청주 한씨의 선영으로 삼아 왔는데, 한여직의 묘 또한 이곳에 있다. 청주 한씨 묘역은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계수동에 있는데, 이 일대는 조선 시대 인천부 황등천면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묘소]
한여직의 묘는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계수동의 청주 한씨 묘역에 있다. 정경부인(貞敬夫人)인 능성 구씨(綾城具氏)와의 합장묘로서, 봉분 앞에는 묘비와 혼유석(魂遊石), 상석(床石), 향로석(香爐石) 등의 석물이 세워져 있다.
[상훈과 추모]
이괄의 난과 유효립의 모반 사건에서 이를 평정한 공을 인정받아 사후 영사원종공신(寧社原從功臣)으로서 우의정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