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6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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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仁川蔡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
집필자 | 김상열 |
[정의]
채선무(蔡先茂)를 시조로 하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과 학익동, 문학동에 세거하던 성씨.
[개설]
인천 채씨(仁川 蔡氏)는 채선무를 시조(始祖)로 하며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학익동·문학동에 집성촌을 이루어 세거하였던 성씨이다. 한국학 중앙 연구원의 한국 역대 인물 종합 정보 시스템에 따르면 인천 채씨의 고려 시대 문과 합격자로는 채보문(蔡寶文)이 있으며, 조선 시대에는 무과 11명, 문과 19명, 생원시 47명, 진사시 34명의 합격자를 배출하였다.
[연원]
채씨(蔡氏)의 연원에 대해서는 문헌이 부족하여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기원전 477년 중국 하남성(河南省)의 채국(蔡國)이 멸망하면서 채씨들이 우리나라에 정착하였다는 설과 춘추 시대에 기자(箕子)를 따라 우리나라에 들어온 채림(蔡琳)을 시조로 보는 설, 그리고 내물왕(奈勿王)의 부마였던 채원광(蔡元光)을 시조로 하는 설이 있다. 한편 채원광을 채보한(蔡輔漢)이라 전하는 기록도 있다.
한편 인천 채씨의 시조인 채선무의 선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평강 채씨(平康 蔡氏)의 시조 채송년(蔡松年)의 후손이라는 설이 있다.
[입향 경위]
채선무는 고려 때 동지사(同知事)를 지내고 동지추밀사(同知樞密事)에 추증되었는데, 그가 인천에 세거하여 채씨 일문을 이루었기 때문에 후손들이 인천을 관향(貫鄕)으로 삼게 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인천도호부(仁川都護府) 편 인물조(人物條)에 의하면 채선무의 아들 채신징(蔡愼徵)은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로 대장군(大將軍)을 지냈다. 3세손 채보문(蔡寶文)은 고려 의종(毅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였고, 은자광록대부(銀紫光祿大夫), 추밀원사(樞密院事), 예부 상서(禮部尙書), 태자빈객 지제고(太子賓客知制誥), 보문각 대제학(寶文閣大提學)을 역임하였고, 금성백(錦城伯)에 봉해졌다.
한편 인천 채씨는 12세손에 이르러 채기(蔡耆)로부터 직장공파(直長公派)가, 채륜(蔡倫)으로부터 필선공파(弼善公派)가, 채우상(蔡遇祥)으로부터 판서공파(判書公派)가, 채승(蔡昇)으로부터 참의공파(參議公派)가, 채징(蔡澄)으로부터 군수공파(郡守公派)가, 채연(蔡淵)으로부터 생원공파(生員公派)가, 채호(蔡灝)로부터 배천공파(白川公派)가, 채이(蔡怡)로부터 복순공파(福順公派)가 분파되었다.
[현황]
2000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인천 채씨는 전국에 11,415가구, 37,391명이 있으며, 인천광역시에는 584가구, 1,933명이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