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17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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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王子王盷-流配地文鶴山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
집필자 | 최인학 |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전하는 왕전(王盷)의 문학산 유배 관련 이야기.
[채록/수집 상황]
1990년에 인천 지방 향토 문화 연구소에서 발행된 『인천 지방 향토 사담』에 「왕자 왕전의 유배지」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내용]
왕전은 고려 13대 선종(宣宗)과 원신궁주 인천 이씨 사이에서 출생한 왕자이다. 원신궁주 이씨의 친정아버지인 이자수는 이자연의 손자로, 시중(侍中) 이정의 아들이다. 그는 호부 상서, 중추원사를 지냈다. 선종이 나이 46세에 별세하자, 세자인 왕욱(王昱)이 11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다. 그가 고려 14대 헌종(獻宗)이다.
헌종은 체질이 허약하고 병이 있어 어머니 사숙 태후(思肅太后)가 섭정을 하였다. 이에 왕권이 확립되지 못했고 정치가 어수선해졌다. 이때, 이자수(李資壽)는 왕권을 바로 세우기 위하여 파당을 모아 유약한 헌종을 폐위시키고, 왕자 왕전을 새 임금으로 세우고자 하였다가 거사 직전에 헌종의 숙부인 계림공(鷄林公)[후에 숙종(肅宗)]에게 발각되어 역모죄로 일당이 사형당하고 혹은 귀양을 가고 말았다. 이때 왕전도 인천으로 유배되어 외가 마을에서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다. 왕전의 외가 마을이 오늘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문학산 기슭이라 추측되기도 하나 확실한 고증은 없다.
[모티프 분석]
헌종이 병들고 어머니인 사숙 태후가 섭정을 하자 나라가 어수선하게 되었고, 이를 바로 잡고자 이자수가 역모를 꾀하게 된다. 이때 거사가 실패하여 결국 왕권 다툼에서 패배한 결과 왕자인 왕전이 문학산 기슭으로 유배를 당했다는 이야기이다. 비류 시대에 문학산은 한 나라의 도읍지였으나 이곳으로 왕전이 유배당했다는 것은 그 위상이 격하되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