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5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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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東顯 |
영어공식명칭 | Suin Gong Hyun |
이칭/별칭 | 회숙(晦叔),매죽당(梅竹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현라 |
출생 시기/일시 | 1641년 8월 21일 - 신동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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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76년 - 신동현 무과 급제 |
몰년 시기/일시 | 1706년 11월 1일 - 신동현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707년 1월 12일 - 신동현 증직 |
추모 시기/일시 | 1708년 1월 9일 - 신동현 사당 건립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16년 - 신동현 문집 『매죽당선생일고』 간행 |
출생지 | 밀양 - 경상남도 밀양시 상남면 조음리 |
성격 | 무신|효자 |
성별 | 남성 |
본관 | 평산(平山) |
[정의]
조선 후기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무신이자 효자.
[가계]
신동현(申東顯)[1641~1706]의 본관은 평산(平山)이고, 자는 회숙(晦叔), 호는 매죽당(梅竹堂)이다. 1641년(인조 19) 8월 21일 경상남도 밀양시 상남면 조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신여기(申汝夔)이고 어머니는 조훈(曺薰)의 딸 창녕조씨(昌寧曺氏)이다.
[활동 사항]
신동현은 어려서부터 남달리 효성이 지극하고 사물의 이치를 깨닫는 것을 근본으로 하는 독서를 많이 하여 학문이 깊었다. 아버지가 병이 들어 물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자 한겨울에 얼음을 깨고 물고기를 잡아다 드렸다. 또 아버지가 “네 머리에 어사화(御賜花)를 꽂는 것이 나의 소원이다.”라고 하자 과거에 뜻이 없었으나 부모의 뜻을 어기는 것은 자식의 본분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과거에 응시하였다. 신동현은 1676년(숙종 2) 무과에 급제하였다.
신동현은 아버지 상을 당하여 3년간 상복을 입고도 또다시 3년간 마음으로 근신하며 심상(心喪)을 지내면서 매일같이 생시에 봉양한 것처럼 새벽에 사당에 배알하고 산소를 찾았다. 그로 인하여 산에 작은 오솔길이 생기자 사람들이 ‘효자로(孝子路)’라고 불렀다.
신동현의 효행이 알려져 1699년(숙종 25)에 순찰사 이세재(李世載)가 조정에 계를 올렸다. 이는 살아 있는 효자를 계달(啓達)한 특이한 사례이다.
신동현은 1706년(숙종 32) 11월 1일에 66세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신동현이 사망한 지 72일이 지난 1707년(숙종 33) 1월 12일에 나라에서 효행으로 ‘창신교위 훈련원판관(彰信校尉訓鍊院判官)’을 증직하였다. 1708년(숙종 34) 1월 9일에 마을 사람들이 재산과 곡식을 내어 유허 옆에 지효사(至孝祠)라는 사당을 세워 봉안하였다. 밀양 무안면 평산신씨 집성촌인 중산리에 있는 중봉서원(中峯書院)에 일암(一庵) 신몽삼(辛夢參)이 상향축문(常享祝文)을 지어 봄가을 중정일(仲丁日)에 배향하였다. 고종 때 중봉서원이 훼철되고 중봉재(中峯齋)로 개칭하여 밀양시 무안면 중산리에 현존하고 있다.
신동현의 문집은 1916년에 목판으로 간행된 2권 1책의 『매죽당선생일고(梅竹堂先生逸稿)』가 있다. 판본은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 사우정(四友亭)에 장판(藏板)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