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5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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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忍 |
영어공식명칭 | Ahn In |
이칭/별칭 | 모렴당(慕濂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현라 |
활동 시기/일시 | 1507년 - 안인 생원시 합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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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밀양 - 경상남도 밀양시 |
거주|이주지 | 전사포리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전사포리 |
묘소|단소 | 율동리 -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율동리 |
사당|배향지 | 모렴당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사포중앙1안길 9[전사포리 619-1] |
성격 | 학자 |
성별 | 남성 |
본관 | 광주(廣州) |
[정의]
조선 전기 밀양 출신의 학자.
[가계]
안인(安忍)[?~?]의 본관은 광주(廣州)이며, 호는 모렴당(慕濂堂)이다. 광주안씨 중조 시어사(侍御史) 안수(安綏)의 9대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안엄경(安淹慶)이고, 할아버지는 예안현감 안억수(安億壽)이다. 아버지는 만호(萬戶) 안여효(安汝孝)이다.
[활동 사항]
안인의 할아버지 안억수는 안인의 작은아버지 정암(貞菴) 안완경(安完慶)[?~1453]이 1453년(단종 1) 계유정난 때 안평대군 일파로 몰려 양산에 유배되어 사사되는 화를 당한 뒤에 관직에서 사퇴하였다. 안억수는 자손에게도 벼슬길에 오르지 말라고 유언하였다.
안인은 1507년(중종 2)에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사림들 사이에서 명망을 얻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유훈을 받고 난 이후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일찍이 익찬(翊贊) 벼슬로 천거를 받아 조정의 부름을 받았으나 거절하였다.
그 후 안인은 밀양 삽포(鈒浦)[현 밀양시 부북면 전사포리]에 숨어 살며 못을 파 연(蓮)을 심고, 주위에 정자를 지어서 ‘모렴당(慕濂堂)’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송나라 학자 염계(灑溪) 주돈이(周敦頤)가 연을 좋아하던 뜻을 본받은 것이다.
[학문과 저술]
안인은 태극도통서(太極圖通書)를 마음에 새겨 읽으면서 성리학의 끝없는 묘리를 연구하고, 나아가 주돈이와 합치하는 경지에 도달하였다. 이러한 학문적 논의는 이웃에 살던 사간(司諫)으로 퇴직한 족형 태만(苔巒) 안구와 김종직의 손자 복재(僕齋) 김유(金紐)와 함께하였다.
[묘소]
안인의 묘소는 밀양시 삼랑진읍 율동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안인은 광주안씨 밀양 사포파 재실인 모렴당[부북면 전사포리 619-1]에서 향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