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9006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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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壽恒 |
영어공식명칭 | Kim Soohang |
이칭/별칭 | 구지(久之),문곡(文谷),문충(文忠)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이패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신채용 |
출생 시기/일시 | 1629년 8월 1일 - 김수항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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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46년 - 김수항 진사시 장원 |
활동 시기/일시 | 1651년 9월 - 김수항 알성시 문과 장원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656년 9월 - 김수항 문과 중시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672년 - 김수항 우의정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75년 - 김수항 영암에 유배 |
활동 시기/일시 | 1680년 4월 - 김수항 영의정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89년 - 김수항 기사환국으로 진도에 유배 |
몰년 시기/일시 | 1689년 4월 9일 - 김수항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693년 5월 - 김수항 진도 봉암사에 배향 |
추모 시기/일시 | 1694년 4월 - 김수항 영암 녹동서원에 배향 |
추모 시기/일시 | 1697년 4월 - 김수항 남양주 석실서원에 배향 |
추모 시기/일시 | 1698년 - 김수항 포천 옥병서원에 배향 |
추모 시기/일시 | 1725년 - 김수항 문충(文忠)이라는 시호를 하사받음 |
추모 시기/일시 | 1886년 - 김수항 현종 묘정에 배향 |
유배|이배지 | 영암 - 전라남도 영암군 |
유배|이배지 | 진도 - 전라남도 진도군 |
묘소|단소 | 김수항 묘소 - 경기도 남양주시 양정로319번길 55[이패동 산11] |
사당|배향지 | 봉암사 -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안치리 |
사당|배향지 | 녹동서원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교동로 73[교동리 356] |
사당|배향지 | 옥병서원 -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주원리 산210 |
성격 | 문신 |
성별 | 남성 |
본관 | 안동(安東) |
대표 관직 | 영의정 |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 이패동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김수항(金壽恒)[1629~1689]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구지(久之), 호는 문곡(文谷)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김대효(金大孝)이고, 할아버지는 김상헌(金尙憲)이다. 아버지는 김광찬(金光燦)이고, 어머니는 김래(金琜)의 딸 연안 김씨(延安 金氏)이다. 부인은 목사 나성두(羅星斗)의 딸 안정 나씨(安定 羅氏)이며, 아들은 김창집(金昌集)·김창협(金昌協)·김창흡(金昌翕)·김창업(金昌業)·김창집(金昌緝)·김창립(金昌立)이다. 사위는 이섭(李涉)이다. 형은 김수증(金壽增)·김수흥(金壽興)이고, 동생은 김수징(金壽徵)·김수응(金壽應)·김수능(金壽能)이다.
[활동 사항]
김수항은 1629년(인조 7) 8월 1일에 태어났다. 1640년 당시 안동에 낙향에 있던 할아버지 김상헌에게 내려가 수학하였지만, 겨울에 김상헌이 심양(瀋陽)으로 끌려가는 바람에 귀경하였다. 1645년 심양에서 돌아온 할아버지 김상헌을 모시고 남양주에 거주하였고, 1646년 진사시에 장원으로 합격하였다. 1651년(효종 2) 9월 알성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성균관전적·병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사헌부지평·사간원정언·이조정랑 등 청요직을 거쳤다. 1656년 9월 치러진 문과 중시에서 을과 1위로 급제한 뒤 동부승지에 올라 효종(孝宗)을 지척에서 보좌하였다.
김수항은 현종(顯宗) 즉위 후 도승지·대사성·이조판서 등을 거쳐 1672년(현종 13) 우의정에 올랐다. 1675년(숙종 2) 2차 예송(禮訟)에서 서인 세력이 패한 뒤 영암(靈巖)으로 유배되었으나, 1680년 경신환국(庚申換局) 후 유배에서 풀려나 4월에 영의정에 올랐다. 1689년에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남인 세력이 다시 집권하자 김수항도 진도(珍島)에 유배되었고, 1689년 4월 9일 유배지 진도에서 사사되었다.
[학문과 저술]
김수항의 저술로는 문집인 『문곡집(文谷集)』28권이 있다.
[묘소]
김수항의 묘소는 남양주시 양정로319번길 55[이패동 산11]에 있다.
[상훈과 추모]
김수항은 1693년 5월 진도(珍島)의 봉암사(鳳巖祠)에 배향되었으며, 1694년 4월 숙종의 특명으로 복관되고 영암의 녹동서원(鹿洞書院)에 배향되었다. 1697년 4월 남양주에 있던 석실서원(石室書院)에 배향되었고, 1698년 포천의 옥병서원(玉屛書院)에 배향되었다. 1725년(영조 1) 문충(文忠)이라는 시호를 하사받았으며, 1886년(고종 23) 12월 현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