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0412 |
---|---|
한자 | 魯岡書院 |
영어음역 | Nogang Seowon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오강리 227[오강길 56-5]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해준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4년 8월 31일 - 논산 노강서원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0호 지정 |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7년 8월 31일 - 논산 노강서원 사적 제540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논산 노강서원 사적 재지정 |
성격 | 서원 |
양식 | 전학후묘 |
건립시기/일시 | 1675년 |
정면칸수 | 사당 3칸|강당 5칸|동재 4칸|서재 4칸 |
측면칸수 | 사당 3칸|강당 3칸|동재 1칸|서재 1칸 |
소재지 주소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오강리 227[오강길 56-5] |
소유자 | 파평유씨 종중 |
문화재 지정번호 | 사적 |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오강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서원.
[개설]
논산 노강서원은 윤황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지방민의 유학 교육을 위하여 세운 서원으로, 1682년(숙종 8)에 사액을 받았다. 성향은 기호계이며, 윤황을 주향으로 하고 윤문거(尹文擧), 윤선거(尹宣擧), 윤증(尹拯) 3인을 추향하는 서원이다.
[위치]
논산시 광석면에서 북쪽으로 약 1.3㎞를 가면 오강리로 건너는 덕포천 운교(雲橋)가 있다. 여기에서 동북쪽으로 400m를 가면 북쪽에 오강리 입구가 나오는데, 이 길로 600m 정도 가면 논산 노강서원이 있다.
[변천]
논산 노강서원은 1675년(숙종 1) 김수항(金壽恒)의 발의로 윤황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1682년(숙종 8)에 노강이라는 사액을 받아 사액 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윤문거를 추가 배향하였다. 그 후 1723년(경종 3)에는 명재 윤증과 윤선거를 추가 배향하였다. 1717년(숙종 43) 정쟁으로 인해 윤선거·윤증 부자의 관직이 삭탈되면서 사액 현판까지 철거되었다가 1722년(경종 2) 양인의 관직이 회복되면서 현판도 복액되었으며, 1781년(정조 5)에 중수하였는데, 대원군의 서원 훼철령에도 철폐되지 않고 비교적 잘 보존되었다.
[형태]
논산 노강서원은 구릉을 등지고 남서향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건물의 배치는 앞면에 강학 공간, 뒷면에 사당이 배치된 전학후묘(前學後廟)식이다. 외삼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을 중심으로 북쪽에 강당이 있고, 양 옆으로 동재와 서재가 있다. 강당 뒤편에는 높은 단을 조성하여 사당을 배치해 두었는데, 사당 주위에는 담을 둘러 엄숙함을 유지하도록 하였다.
[현황]
1974년 8월 31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되었다. 2017년 8월 31일 사적 제54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사적으로 재지정되었다. 유림들에 의하여 매년 음력 2월과 8월 중정(中丁)에 선현들을 위한 제사가 거행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윤황은 노성을 가향으로 살아온 파평윤씨 일족이다. 추향 3인은 윤황의 자손들로 윤문거와 윤선거는 윤황의 아들이며, 윤증은 윤선거의 아들이다. 학맥으로 보면 윤황은 성혼의 문인이고 윤선거는 김장생의 문인이자 충청오현(忠淸五賢)에 드는 서인의 거두이다. 또한 윤증은 소론의 영수이다. 따라서 논산 노강서원의 성향은 기호계이며 제향인들의 면면으로 볼 때 파평 윤씨의 대표적 문중 서원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 서원의 건립을 발의하였던 인물들은 김수항을 비롯한 당대의 명상 명현들이었다. 특히 논산 노강서원의 건립을 발의하고, 영건문(營建文)을 지은 김수항은 김상헌의 손자이자 송시열과 같이 활약한 서인의 중진이며, 나중에는 노론에 가담하여 윤증 등을 공격하기도 한 인물이다. 그러나 논산 노강서원 건립 당시는 노론과 소론의 갈등이 첨예화되기 이전이었다. 이로 볼 때 노강서원은 파평 윤씨의 문중 서원이면서 동시에 기호계의 서원으로 인정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어, 노성 지역을 가향으로 삼아서 살아온 파평 윤씨의 활발한 사족 활동을 알 수 있는 자료로서 의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