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04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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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論山六谷里古墳群 |
영어의미역 | Nonsan Yukgokri Tumul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육곡리 산6-1 일원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이현숙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4년 11월 4일 - 논산육곡리고분군 충청남도 기념물 제95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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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논산육곡리고분군 충청남도 기념물 재지정 |
성격 | 고분군 |
양식 | 굴식 돌방무덤 |
건립시기/연도 | 백제 말기 |
소재지 주소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육곡리 산6-1 일원 |
문화재 지정번호 | 충청남도 기념물 |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육곡리에 있는 백제시대 고분군.
[위치]
논산육곡리고분군은 마을의 북쪽에 동에서 서쪽으로 흘러내리듯이 형성된 능선 남서쪽 비탈 중하단부에 분포한다. 이 지역은 육곡리 천상마을의 북쪽 뒷산에 해당한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논산육곡리고분군에 대한 조사는 백제문화개발연구원의 지원으로 1986년 공주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백제시대에 축조된 고분 13기가 확인되었으나 10기는 이미 도굴되었고 3기만이 도굴되지 않은 상태였다.
[형태]
논산육곡리고분군에서 발굴한 고분은 묘실의 남벽에 입구 및 연도가 있는 굴식 돌방무덤이 대부분이다. 내부 구조는 단면 육각형이 가장 많고 단면 사각형과 터널형 구조도 있다. 단면 육각형의 구조는 장방형 묘실 좌우의 장벽을 일정한 높이까지 쌓은 후 안으로 30° 정도 절각(折角)되게 쌓고 그 위에 덮개돌을 덮은 형식이다.
단면 사각형 구조의 경우 입구만 갖춘 앞트기식 형태도 일부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논산육곡리고분군은 대부분 백제 말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분 가운데 6호분에서 2구의 인골이, 7호분에서 3구의 인골이 확인되었다.
[출토유물]
논산육곡리고분군에서 유물이 출토된 고분은 도굴이 이루어지지 않은 3기뿐이다. 2호분에서 항아리 3점, 뚜껑 접시 5세트, 발형 토기 2점과 금동제 귀고리 1쌍, 6호분에서 토기 2점과 금동제 귀고리 1쌍, 7호분에서 토기 1점과 은제 화형관식 1점, 관고리, 널못이 출토되었다.
[현황]
논산육곡리고분군은 1994년 11월 4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9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고분이 분포한 곳은 현재 경작지로 개간한 지역과 산림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의의와 평가]
논산육곡리고분군은 백제시대 사회상을 이해하는 데 몇 가지 새로운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6호분과 7호분에서 모두 5구의 인골이 출토된 점으로 미루어 당시 합장(合葬) 이외에 추가장(追加葬)을 가늠할 수 있는 다장(多葬)이 행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무덤 주인의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유물이 출토된 점도 중요한 단서이다. 즉 은제 화형관식은 기록상 6품, 즉 나솔(奈率) 이상의 관등을 받은 자만이 착용할 수 있는 것으로, 7호분의 주인이 백제의 관등 체계에서 6품 나솔 이상의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더불어 관등 체계에 포함된 상류층 무덤의 부장 유물이 토기 1점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백제 말기에 이르면 고분에 부장품을 넣는 풍습이 점차 줄어들고 장례를 간단히 치르는 박장(薄葬)이 유행했음을 반증해 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나아가 백제의 지방 통치 체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