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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생문묘배향교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1381
한자 金長生文廟配享敎旨
영어의미역 Kings' Appointment Letters of Worshipping of Gim Jangsaeng at Confucian Shrine
이칭/별칭 김장생 문묘 배향 교서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178[고정길 250]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연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87년 12월 30일연표보기 - 김장생문묘배향교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8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김장생문묘배향교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성격 교서
관련인물 김장생
발급자 숙종
수급자 김장생
발급일시 1717년 5월 18일연표보기
소장처 광산 김씨 문원공파 종중
소장처 주소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178[고정길 250]지도보기
문화재 지정번호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광산 김씨 문원공파 종중에서 소유하고 있는 1717년(숙종 43) 김장생의 문묘 배향을 명하는 교서.

[개설]

사계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학자로, 1578년(선조 11)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6품직에 오른 뒤 창릉 참봉을 거쳐 정산 현감을 지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호조 정랑으로 명군의 군량 조달에 공을 세웠다. 1602년 청백리로 뽑혔으며, 후에 형조 참판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교육에 전념하였다.

인조반정 이후 서인의 영수 격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여 이이(李珥)의 문인으로 줄곧 조정에서 활약한 이귀(李貴)와 함께 인조 초반의 정국을 서인 중심으로 안착시키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하였다. 정치적으로는 인조 초반의 정국을 서인 중심으로 안착시키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하였다. 학문적으로는 송익필(宋翼弼)·이이·성혼(成渾) 등의 영향을 받았으나 예학(禮學) 분야는 송익필의 영향이 컸다. 김장생이 발전시킨 예학은 아들 김집(金集)에게 계승되니, 조선 예학의 태두로 예학파의 한 주류를 형성하였다.

[제작 발급 경위]

1631년(인조 9) 김장생이 세상을 떠난 뒤 바로 장유(張維)가 시호를 청하였으나 윤허 받지 못하였고, 1657년(효종 8)에 비로소 ‘문원(文元)’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1712년(숙종 38) 영남의 유생 천수백 명이 상소하여 문묘 종사를 청하면서 김장생의 문묘 종사 운동이 시작되었다. 1713년 10월까지 팔도 유생의 상소가 네 차례에 걸쳐 이루어지면서 전국적인 사림 운동으로 확대되어 1714년 9월 팔도 유생의 상소가 있었고, 1715년(숙종 41)에는 관학 유생 정관하(鄭觀河) 등의 상소가 이어졌다. 1717년 상소가 받아들여져 문묘의 서무(西廡)에 배향되었다.

[구성/내용]

김장생문묘배향교지는 가로 630㎝, 세로 88㎝의 한지에 세로로 48줄, 총 624자의 글자가 쓰여 있다. 1717년(숙종 43) 5월 18일 문묘 배향을 윤허하는 교서로 “교증영의정문원공김장생종사문묘서(敎贈領議政文元公金長生從祀文廟書)”로 시작한다. 문묘 배향 교서가 내려지고 같은 해 10월에 시호를 내리는 사시(賜諡) 교지가 내려져 현재까지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김장생 문묘 배향 교서」김장생은 물론 문묘 종사 운동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1987년 12월 30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 최근묵, 「우암 송시열의 문묘 및 서원종사」(『백제연구』15,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1984)
  • 국사편찬위원회(http://www.history.go.kr)
  • 문화재청(http://www.cha.go.kr)
  •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http://people.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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