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7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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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花山書院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방축리 산16-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근호 |
건립 시기/일시 | 1631년 - 백사 서원 창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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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635년 - 백사 서원 화봉산 아래로 이건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659년 - 백사 서원 ‘화산’으로 사액 |
훼철|철거 시기/일시 | 1868년 - 화산서원 훼철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71년 - 화산서원 복원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5년 09월 05일 - 화산서원 경기도 기념물 제46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화산서원 경기도 기념물 재지정 |
현 소재지 | 화산서원 -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방축리 산16-1 |
원소재지 | 백사 서원 -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옥금동 |
성격 | 서원 |
소유자 | 포천 유림 |
관리자 | 이병춘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기도 기념물 |
[정의]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방축리에 있는 이항복(李恒福)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진 서원.
[위치]
화산서원은 처음 백사 서원으로 불릴 때는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옥금동에 위치하였으나, 이후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방축리 산16-1로 이전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화산서원은 화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데, 뒤쪽에는 산을 등지고 앞쪽으로는 시야가 트이면서 들이 바라다 보이는 산기슭에 터를 잡았다.
[변천]
화산서원은 처음에는 백사 서원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하였다. 백사 서원은 1631년(인조 9)에 포천 유림의 공의로 경기도 포천군 가산면 옥금동에 창건되었다. 이후 1635년 지금의 화봉산 아래로 이건하였으며, 1659년(효종 10) 이곳의 꽃뫼라는 지명을 따서 ‘화산(花山)’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1868년(고종 5)에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자 이때 모시던 위패를 땅에 묻었다가 포천 유림에 의해 향사를 이어 왔으며 사우인 인덕전(仁德殿)을 복원하고 지속적으로 동재·서재 담장, 내·외 삼문, 동·서 협문, 각 3칸의 필운재(弼雲齋)와 동강재(東岡齋)를 지었다. 현재 건물은 고종 때 훼철된 것을 1971년에 복원한 것이다. 1975년 9월 5일 경기도 기념물 제4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기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화산서원을 구성하고 있는 건물은 이항복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인 인덕전과 재실로 이루어졌다. 본래 교육 시설은 앞쪽에, 제향 시설은 뒤쪽에 마련하는 것이 서원 건축물의 원칙이었다. 그런데 화산서원은 강당이 없다. 대신 동재와 서재를 대칭으로 두었다. 남북의 축을 따라 동서에 대칭으로 건물을 배치하였으며 남쪽에서부터 외삼문, 사당 등을 이 축선에 맞추어 세우고 사당은 별도 담장을 두른 다음, 그 앞에 내삼문을 두어 출입을 제한하였다.
[현황]
경내의 건물로는 4칸의 인덕전, 내신문(內神門), 동서 협문, 각 3칸의 필운재와 동강재·외신문(外神門) 등이 있다. 사당인 인덕전에는 이항복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동강재와 필운재는 강당을 겸한 재실인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의 토론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