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735 |
---|---|
한자 | 孝子申礏旌門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음현리 734-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근호 |
건립 시기/일시 | 1703년 - 효자 신급 정문 건립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865년 - 신급의 5세손 신윤하 효자 정문이 내려짐 |
훼철|철거 시기/일시 | 1951년 - 효자 신급 정문 소실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1년 - 효자 신급 정문 중건 |
훼철|철거 시기/일시 | 2002년 - 효자 신급 정문 수해로 유실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6년 04월 09일 - 효자 신급 정문 포천시 향토 유적 제9호로 지정 |
현 소재지 | 효자 신급 정문 -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음현리 734-2 |
성격 | 정려 |
양식 | 홑처마 맞배지붕 |
소유자 | 신윤철 |
관리자 | 신귀현 |
문화재 지정 번호 | 포천시 향토 유적 제9호 |
[정의]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음현리에 있는 조선 중기 신급(申礏)의 정려문.
[개설]
신급[1543~1592]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노모를 모시고 강원도의 이천(伊川)에 피신하여 산 위에 올라가 적정을 살피고 내려온 사이 노모와 가족이 적에게 화를 당했다는 잘못된 소식을 듣고 멀리 떨어져 있던 맏형과 전사한 두 동생을 생각하고 불효를 자책하며 절벽에 투신하여 목숨을 끊었다. 1703년(숙종 29) 이를 기려 효자 정려를 내렸다.
[위치]
효자 신급 정문은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음현리 내촌 중학교 뒤쪽 평지에 위치해 있다. 뒤쪽 멀리로는 산을 등지고 앞쪽으로는 시야가 트이면서 들이 펼쳐져 있다.
[변천]
1703년에 정려의 은전이 내려 정각을 짓게 하였다. 1865년에는 신급의 5세손 신윤하도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효자 정문이 내려져 함께 모셔졌다. 6·25 전쟁의 와중인 1951년에 소실된 것을 1981년에 중건하였다. 포천시청의 기록에 따르면 2002년에 수해로 다시 유실되었다고 한다. 1986년 4월 9일 포천시 향토 유적 제9호로 지정되었다.
[형태]
약간 지대를 높여 건축하고 별도로 담장을 둘렀다. 정문은 홑처마 맞배지붕으로 방풍판을 달았다. 처마 왼쪽에 ‘효자지문’이라는 현액을 내걸고 안쪽에 정려 현액을 걸었다. 왼쪽이 신급의 것, 오른쪽이 신윤하의 것이다. 규모는 정면 4.25m, 측면 2.15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