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7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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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興根先生墓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기산리 46-9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덕원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796년 - 김흥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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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870년 - 김흥근 사망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876년 - 김흥근 선생 묘비 건립 |
이장 시기/일시 | 1880년 - 김흥근 선생 묘 포천시 일동면 기산리로 이장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6년 4월 - 김흥근 선생 묘 포천시 향토 유적 제31호로 지정 |
현 소재지 | 김흥근 선생 묘 소재지 - 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기산리 46-9 |
원소재재 | 김흥근 선생 묘 원 소재지 - 경기도 시흥군 상북면 |
성격 | 묘 |
양식 | 원형 봉분 |
관련 인물 | 김흥근(金興根)[1796~1870]|청송 심씨(靑松 沈氏) |
봉분 크기/묘역 면적 | 봉분 높이 160㎝|폭 400㎝|호석 높이 27㎝, 묘역 10×10m |
문화재 지정 번호 | 포천시 향토 유적 제31호 |
[정의]
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기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김흥근의 묘.
[개설]
김흥근(金興根)[1796~1870]의 자는 기경(起卿)이고, 호는 유관(遊觀)이며,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이조 참판 김명순(金明淳)의 아들이고, 형은 좌의정 김홍근(金弘根)이다. 시호는 충문(忠文)이고, 노년에는 포천군 일동면 수입리 웃갈기에서 살았다.
[위치]
포천시 일동면 기산리에 있는 일동 초등학교에서 오른쪽 지방도 202호선으로 약 500m 가면 도로 오른쪽으로 소야골 마을이 나오는데, 이 마을의 뒷산인 금주산 동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주소지는 포천시 일동면 기산리 46번지이다.
[변천]
묘소는 처음에 시흥군 상북면에 안장하였다가 1880년(고종 17)에 지금의 포천시 일동면 기산리 소야골의 금주산 동쪽 기슭으로 이장하였다.
[형태]
묘역은 남동향의 2단의 대지 위에 조성하였는데, 넓이는 10×10m이다. 봉분은 높이 160㎝, 폭 400㎝의 규모로 둘레에 높이 27㎝의 호석을 둘렀다. 묘비는 옥개와 비좌를 갖추었는데, 비좌는 90×69㎝의 방형 상면에 높이는 55㎝이다. 비신은 높이 134㎝, 폭 47㎝, 두께 24㎝의 대리석이고, 전면에는 총탄 자국이 있다. 옥개는 팔작지붕 형식으로 하면에 공포를 모각하였는데, 하단은 86×66㎝ 규모이고 높이는 51㎝이다. 비좌는 90×70㎝ 규모의 장방형 상면에 높이는 55㎝이다.
혼유석은 83×32㎝의 상면에 높이 20㎝이다. 상석은 128×83㎝의 상면에 높이 38㎝, 폭 40㎝, 높이 30㎝의 북석 2기로 전면을 받치고 있는데, 북석의 측면에는 고리형의 문양을 표현하였다. 향로석은 46×27㎝의 상면에 높이 37㎝이다. 향로석의 왼쪽에는 제주석(祭酒石)이 있는데, 45×37㎝의 상면에 높이 30㎝이다. 망주석은 높이 170㎝, 두께 25㎝의 팔각기둥 형태로 동물 문양은 없다.
[금석문]
묘비는 2면 비로, 자경(字徑)은 앞면 10㎝, 뒷면 2㎝이다. 비문은 앞면에 세로로 3행이 새겨져 있는데, 오른쪽부터 ‘유명 조선국 의정부 영의정 치사 봉조하 시 충문 안동 김공 흥근 지묘 배 증 정경부인 청송 심씨 부좌(有明朝鮮國議政府領議政致仕奉 朝賀諡忠文安東金公興根之墓 配贈貞敬夫人靑松沈氏祔左)’라고 기록되어 있다. 묘비는 숭정 기원 후 오 병자(崇禎紀元後五丙子)인 1876년(고종 13)에 세웠는데, 비문은 영의정 이경재(李景在)가 짓고, 글씨는 좌의정 송근수(宋近洙)가 썼으며, 판서 이시민(李時敏)이 전(篆)을 썼다.
[현황]
김흥근 선생 묘는 1986년 4월 포천시 향토 유적 제31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김흥근은 조선 후기 세도 정치(世道政治)의 대표적인 세력인 안동 김씨의 인물 중 한 사람으로 영의정을 역임하였다. 노년에 포천시 일동군 수입리에서 살았으므로, 포천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안동 김씨 세력과 조선 후기 세도 정치의 관련성을 규명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