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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군[고대/고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252
한자 三陟郡[古代/高麗]
영어공식명칭 Samcheokgu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강원도 삼척시
시대 고대/남북국시대,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배재홍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시행 시기/일시 757년(경덕왕 16) - 삼척군으로 개칭
시행 시기/일시 1377년(우왕 3)연표보기 - 삼척군으로 승격
개정 시기/일시 995년(성종 14)연표보기 - 척주로 승격
개정 시기/일시 1393년(태조 2) - 삼척부로 승격

[정의]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 때 삼척 지역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단위.

[개설]

신라 경덕왕 때인 757년 지방 제도 개혁 때 실직군삼척군으로 개명하였다. 또 고려 말인 1377년에 삼척현에서 삼척군으로 승격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신라 경덕왕이 757년(경덕왕 16) 실직군(悉直郡)에서 삼척군(三陟郡)으로 개명한 것은 당시 지방 제도를 개혁하면서 주(州)·군(郡)·현(縣)의 전통 명칭을 중국식으로 개칭하였기 때문이었다. 또 고려 말인 1377년(우왕 3)에 삼척현에서 삼척군으로 승격된 것은 당시 왜구의 빈번한 동해안 침략으로 삼척 지역의 군사 요충지로서의 중요성이 부각되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 권 35, 잡지 4, 지리 2조에 경덕왕이 삼척군으로 명칭을 고쳤으며, 영현(領縣)은 4개라고 하였다.

『고려사』 권 116, 열전 29조에는 남은(南誾)[1354~1398]이 삼척군에서 왜구를 물리쳤다는 기록이 나온다.

[내용]

757년 설치 삼척군: 당시 삼척군에는 죽령현(竹嶺縣), 만경현(滿卿縣)[또는 만향현(滿鄕縣)], 우계현(羽溪縣), 해리현(海利縣) 등 네 개의 영현(領縣)이 있었다. 삼척군에는 지방관으로 태수(太守)가 파견되고, 각 영현에는 규모에 따라 현령(縣令) 또는 소수(少守)가 임명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삼척군은 하서주(河西州)에 속하였다.

한편 757년에 주·군·현의 전통 명칭을 중국식으로 바꿀 때 ‘실직’을 왜 ‘삼척’으로 개칭하였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삼척군수 심의승(沈宜昇)은 『삼척군지』에서 실직[솃쩍·스이쳑]을 한자 음독(音讀)으로 고쳐 써서 삼척이라 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1377년 설치 삼척군: 읍격이 지금까지의 현(縣)에서 군(郡)으로 승격되어 삼척군이 됨으로써 지방관도 현령이 아닌 지군사(知郡事)가 파견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삼척군으로 승격되어 지군사가 파견된 연도를 『고려사』에서는 1377년이라고 하였으나 『척주지』를 비롯한 읍지에는 1378년(우왕 4)에 지군사를 두었다고 하고 있어 차이가 난다. 『척주선생안』에 따르면 최초로 지군사에 임명된 자는 이득강이다. 이득강은 1377년 10월에 삼척군 지군사로 부임하였다.

[변천]

757년에 개명된 삼척군은 이후 240여 년 동안 존속하다가 고려 때인 995년(성종 14)의 지방 제도 개편 때 척주(陟州)로 승격되었다. 그리고 고려 말인 1377년에 설치된 삼척군은 조선태조 때인 1393년(태조 2)에 삼척부(三陟府)로 승격되었다.

[의의와 평가]

757년 삼척군으로의 개명은 삼척이라는 읍명이 처음으로 사용되었다는데 의의가 있다. 또 1377년 삼척군으로의 승격은 삼척 지역이 군사 요충지로서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계기가 되었다는데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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