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4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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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靑銅器時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장제근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지역에서 청동기를 사용하던 시대의 역사와 문화.
[개설]
제주도에서는 청동기시대에 속하는 전형적인 청동 제품이 발견된 바 없다. 다만, 한반도 청동기시대 전기와 후기의 민무늬 토기를 대표하는 상모리 유적의 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문화와 송국리식 문화가 제주에서도 성행한다. 따라서 제주도의 청동기 문화는 구멍무늬 토기 문화를 시작으로 후기에는 삼양동식 토기로 알려진 송국리 문화가 전개된다고 할 수 있다.
[서귀포 지역의 유적과 유물]
청동기시대 서귀포 지역의 대표적인 토기 문화는 구멍무늬 토기 문화로 제주도 남서편 해안가와 인접해 위치한 대정읍 상모리 유적과 하모리 유적이 대표적이다. 상모리 유적은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산이수동 71-1번지 [산이물]해안 일대에 위치하고 있는데, 대정읍에 우뚝 솟은 오름인 송악산[해발84m]의 북쪽에 발달한 해안 사구의 남단에 해당된다. 1985년 약 1만여평 범위의 유물 산포지와 패총이 확인되었으며, 1988년 유적의 전체적인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4개 지구 약 600여평에 대한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유적의 층위는 표토층인 회색 ․ 흑회색 모래층[10-150㎝]이 위치하고, 그 하부에 유물이 출토되는 흑갈색 점토층[5-50㎝]과 흑갈색 사질 점토층[10-30㎝], 그리고 패각층 등으로 구분된다. 조사 결과, 방형에 가까운 부정형의 추정 주거지[295×336㎝] 1기와 내부에 돌이 채워진 토광형의 원형 노지[爐址) 1기[직경 180㎝]가 근접되어 발견되었으며, 이와 함께 특별한 시설이 없는 토광형의 원형 노지[직경 68㎝, 깊이 18㎝] 1기 등 3기가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은 토기가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데 구멍무늬 토기, 아가리 부근에 빗금을 긋거나 겹구연을 가진 변형 팽이형토기[角形土器], 그리고 적색 마연토기(赤色磨硏土器) 등이 있다. 토기는 그 변화 양상에 의하여 유입, 제작 성행, 퇴화의 3단계로 구분되는데, 유입 단계는 육지와 동일한 태토 구성을 보이며 아가리에 골아가리, 공렬, 이중구연, 단사선 무늬가 나타난다. 이러한 복합 문양의 토기는 한강 유역의 여주 흔암리 유적 등에서 확인되었다. 성행 단계는 제주도 자체 제작으로 태토에 현무암 알갱이가 혼입되며 문양은 전 단계와 동일하게 시문되어 있다. 퇴화 단계가 되면, 태토는 이전 단계와 동일하나 이중구연, 단사선과 같은 팽이형 토기의 특징이 사라지고 골아가리, 구멍무늬가 잔존한다.
그 외 토제품으로 방추차, 어망추 등이 있다. 석기로는 마제 석부, 대팻날, 석착, 삼각만입식 ․ 유경식 석촉, 석제 팔찌[石釧], 갈판[碾石], 망치돌[敲石] 등이 출토되었으며, 그 외 뼈바늘, 조개 팔찌[貝釧] 등의 골각기와 전복, 소라 등의 각종 패각류, 그리고 동물 뼈 등 자연 유물 25종이 확인되었다. 상모리 유적은 한반도 청동기 문화가 유입되어 형성된 생활 유적으로, 그 시기는 기원전 6세기를 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적의 입지와 출토 유물을 통해 보면 당시 사람들은 바다를 배경으로 한 어로를 생활 기반으로 삼고, 일부 수렵 ․ 채집을 병행하였던 것으로 이해되는데, 이는 당시 우리 나라 대부분의 유적이 내륙의 강변에 위치하여 농경을 중심으로 한 채집과 사냥, 그리고 담수 어로 등의 경제 행위가 이루어진 것과는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하모리 유적은 송악산의 서쪽 평탄 대지에 위치하는 유적으로 하모 해수욕장의 주차 시설 공사 중 사구의 단애면에서 패각의 일부가 노출되면서 유적이 확인되었다. 유적에서는 신석기 시대 후기의 집석유구를 비롯하여 청동기시대의 방형 ․ 장방형 주거지 등이 확인되었으며, 내부에서는 구멍무늬 토기, 마연 토기, 외반구연 토기가 출토되었다. 토기 이외에도 마제 석기류가 있는데, 화살촉, 돌도끼, 돌끌, 공이석기 등이 있다.
패총에서는 토기와 석기뿐만 아니라 전복, 소라를 중심으로 한 각종 패각류와 동물 뼈들이 확인되고 있어 당시 주된 경제 행위는 해산물채취와 어로행위, 그리고 수렵에 의한 식량 자원 확보가 우선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서귀포 지역뿐만 아니라 제주시 삼양동 유적 등 제주도 내에 다수 확인되고 있다.
[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우리 나라 청동기시대의 이른 시기에 동북 지방에서 처음으로 나타나는 토기로 구연부(口緣部)에 관통(貫通) 또는 반관통(半貫通)의 구멍이 뚫려 있다. 구멍은 안쪽에서 뚫은 것과 바깥쪽에서 뚫은 것이 있는데 구연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1줄을 횡으로 배치한 것이 일반적이나 2줄이 있는 것도 있다. 기형은 대체로 심발형(深鉢形)이며, 구순(口脣)에 홈을 새긴 각목문(刻目文)과 함께 나타나기도 한다.
제주도에서 구멍무늬 토기는 상모리 유적, 용담동 석곽묘, 북촌리 유적, 곽지 패총, 동명리 유적 등에서 출토되고 있으며 각목문 및 마연토기와 공반되고 있다. 이 토기들은 순수 구멍무늬 토기, 각목 토기, 공렬과 각목 장식이 함께 있는 토기, 공렬 및 각목 장식과 이중구연, 단사선 무늬가 결합된 토기 등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육지부에서 이와 유사한 토기로는 한강 유역의 역삼동 유적, 가락동 유적, 흔암리 유적 등에서 구멍무늬 토기와 팽이형 토기의 복합 형식의 유물이 출토된 바 있다. 구멍무늬 토기는 대동강 유역의 팽이형 토기 문화권을 제외한 한반도 전역에서 출토되고 있으며 동해안과 한강을 따라 중부와 남부 지방으로 전파되어 민무늬 토기 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로 정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