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0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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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喪禮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송위지 |
[정의]
죽은 이의 시신을 처리하는 의례.
[내용]
상례는 인간의 4대 통과의례의 하나로서, 시신을 매장 또는 화장하는 의례인 장례(葬禮) 이전까지의 과정인 상중에 행하는 모든 예절을 의미한다. 사람이 운명하는 순간에서부터 시신에 수의를 입히고 입관하며 매장하거나 화장하고 근친들이 그 죽음을 애도하고 근신하면서 복을 입는 방법은 물론, 일정기간이 지난 후 평상생활로 돌아갈 때까지의 각종제례의 의식절차를 통틀어 말한다.
일반적으로 장례와 상례를 혼동하기도 하나 상례가 장례보다는 넓은 의미이다. 즉 상례가 상중에 행하는 모든 의례를 의미한다면, 장례는 그 중 장법과 관련된 것만을 의미한다. 고려시대 이전에는 불교식 의례가 주로 이루어졌으나, 조선시대에 주자학을 지도이념으로 채택하면서 유교의례가 본격적으로 보급되어, 조선 중기 이후 주희의 『가례(家禮)』를 중심으로 하는 유교적 의례가 보편화되었다. 조선 말에 들어서 천주교와 기독교의 전래에 따라 천주교식, 기독교식 상례가 보급되기 시작하였으며, 일제강점기 때인 1912년에 발표한 「화장취체규칙(火葬取締規則)」, 1934년에 발표한 「의례준칙(儀禮準則)」 등에 의해 화장이 보급되고 유교의례가 간소화되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상례규범의 간소화는 1961년의 「의례준칙」, 1969년의 「가정의례준칙」의 제정을 계기로 이루어졌으며, 여기에 산업화, 도시화된 사회적 여건도 상례의 변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에 따라 장의사(葬儀社)와 장례식장(葬禮式場: 영안실) 등 전문 상장례 대행자가 등장하면서, 가가례(家家禮)로 통칭되던 지역별, 문중별로 다양성을 지니던 상장례 방식이 규격화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현황]
성남지역의 경우, 1970년대 중반까지는 초상이 나면 같은 문중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집안에서 상례를 치르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경제력이 있는 가문조차도 장의사에게 의존하기보다는 일가친척들이 분담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염습을 위해 염사를 불러오는 것은 그 이전부터 널리 퍼져 있던 관습이었던 듯하다. 이후 핵가족화 및 성남지역의 개발로 인해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현존하는 농촌마을에서조차 1990년대에 들면 종합병원 장례식장을 이용하는 상례가 보편화되었다. 이는 분당 개발과 함께 개원한 종합병원으로 인해 장례식장을 이용하기가 수월해진 데 주된 원인이 있다.
현재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상례는 지역적, 가문별 고유성을 거의 상실하고, 종교에 따라 규격화되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장의사 및 장례식장의 보편화에 따른 결과이다. 현재 병원 부속 장례식장뿐 아니라 전문 장례식장이 늘어나는 추세이고,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본다. 향후 상례 연구에서는 상주를 돕는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망을 중점적으로 연구할 필요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