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3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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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順興安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문수진 |
세거지 | 수정구 심곡동 아랫말|웃말|중원구 은행동|분당동 안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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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기도 성남시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유래]
한림공 안명세(安名世)의 후손이 수정구 심곡동에 이주한 후 세거하였으며, 해주목사 안종약(安從約)[1355~1424]의 장남 안구(安玖)가 정착한 이래 후손이 세거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후 정민공 안당(安瑭)[1461~1521]이 조광조를 추천 등용하였다는 이유로 1519년 기묘사화와 1521년 신사무옥에 연루되어 멸문지화를 당하였다. 이때 율동에 있는 안구의 장손 안호(安瑚)의 고가도 화재를 당하고, 안기(安璣)의 아들 안처경(安處經)도 율동을 떠나 남원으로 내려가 은둔생활을 하였다. 안씨네가 율동을 떠난 후 수백년의 세월이 흐른지라 새마을연수원 일대 안씨 종산의 묘소가 도굴꾼에 의해 훼손되어 묘가 없어지는 변괴를 당하였다.
[세거지]
심곡동 아랫말과 웃말, 중원구 은행동에 세거한다. 분당구 분당동 안말에도 대대로 세거하고, 분당구 율동의 최초의 배포자로 알려진 시조 안자미(安子美)의 9대손 해주목사 안종약의 장남 안구가 정착한 이래 후손이 세거한다.
안씨네 묘소를 관리하고 조상을 받들기 위하여 1974년 안구의 18대손이요, 안기의 사손(嗣孫)인 안재덕(安在德)의 3남 안봉선[1898~1977]이 남원에서 옛 조상이 살던 곳인 율동으로 이거하였다. 현재 그의 아들 안준근[1946년생]이 율동 재실에 살고 있다. 안씨네는 안처선의 아들 안정(安挺)의 3녀가 한계희의 후손인 월탄 한효순(韓孝純)에게 출가하여 율동 청주한씨와 사돈지간이 되었다.
[집성촌]
한림공 안명세의 증손 안목(安睦)의 장자 안홍봉(安弘奉)[1504~1544]과 차남 안홍기(安弘起)[1521~1587] 형제가 심곡저수지 위 안골[장벌]에 자리잡고 살다가 수정구 심곡동 392-6호[심곡로57번길 12]에 이주하였고 그 후손이 세거하여 안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현재 안목(安睦)의 10대손 안상정(安商政) 등 후손들이 살고 있다.
[인물]
안구는 1417년 장원급제 후 통정대부 판군자감에 이르렀으며 1441년에 죽었다. 안구의 아들 안지귀(安知歸)는 홍문관, 예문관 대제학을 역임했고, 장손 안호(安瑚)는 공조참판, 안선(安璿)은 부정(副正), 안침(安琛)은 공조판서, 안종(安琮)은 임실현감, 안기(安璣)는 성균관전적 겸 남학교수를 지냈다. 또한 안호의 아들 안처신(安處信)은 부사, 안처관(安處寬)은 감역, 안침의 아들 안처명(安處命)은 회양부사, 안기의 아들 안처경(安處經)은 장수현감을 역임했다. 안경(安璟)의 4남 안돈후(安敦厚)의 3남인 안당은 좌의정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