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19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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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蔡弘宇 |
영어음역 | Chae Hongu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해준 |
출생 시기/일시 | 1765년 - 채홍우 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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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836년 - 채홍우 졸 |
추모 시기/일시 | 1895년 - 정려 받음 |
출생지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고산리 곰실마을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평강 |
[정의]
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평강. 1670년경 서산시 운산면 고산리 곰실마을로 입향한 채근후(蔡謹後)의 5세손이다. 부인은 한산 이씨이다.
[활동 사항]
채홍우(蔡弘宇)[1765~1836]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8세 때 이미 효동으로 이름을 알렸다. 어른이 되어서는 부인 한산 이씨와 함께 정성껏 부모를 봉양하여 칭송을 받았다. 병든 아버지가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끊어 피를 마시게 하고 건강 상태를 알기 위해 변을 맛보았다. 또 한겨울에 버섯과 잉어를 구하여 잡숫게 하였다. 양친이 죽은 뒤에는 3년씩 시묘하였다. 지극한 효행에 감동하여 호랑이가 여막을 지키고, 새들은 주변을 날지 않았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인근 유림의 추천으로 1895년(고종 32)에 명정을 받았지만 100여 년 전 화재로 정려각과 현판이 소실되었다. 1859년(철종 10)에 작성된 채홍우 정려 포장에 대한 예조 입안 문서가 서산시 운산면 고산리 곰실마을에 사는 후손 채병일의 집에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