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900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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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君子峰 |
영어공식명칭 | Gunjabong |
이칭/별칭 | 군자산,일봉산(一峰山),서령산(西嶺山)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지명/자연 지명 |
지역 | 경기도 시흥시 군자동|장현동|능곡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현숙 |
해당 지역 소재지 | 경기도 시흥시 군자동|장현동|능곡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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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산 |
높이 | 198.4m |
[정의]
경기도 시흥시 군자동·장현동·능곡동에 걸쳐 있는 산.
[개설]
군자봉에는 ‘세 자 세 치가 깎인’ 전설이 전해진다. 전설에 따르면 유씨 집안의 여종 하나가 주인으로부터 벌을 받아 숨을 거두었다. 죽은 여종의 아들이 금강산으로 들어가 스님에게 풍수를 배우다가 스님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풍수에 조예가 깊은 스님이 마을에 왔다는 소식에 유씨 집안에서 그를 불러 가문의 부흥과 발복을 빌었더니, 스님은 군자봉 정상이 뾰족해 집안의 기운을 막고 있으니 정상 부위를 깎아야 한다고 하였다. 유씨 가문은 일꾼들을 동원해 한나절 만에 군자봉을 세 자 세 치 깎아내렸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유씨 가문의 몰락을 염두에 둔 스님의 복수였다고 한다.
[명칭 유래]
군자봉은 봉우리가 하나여서 ‘일봉산(一峰山)’이라 하기도 하고, 산의 내령이 서쪽으로 뻗어 있어 ‘서령산(西嶺山)’이라고도 불렸다. 그러다가 조선 제6대 임금인 단종이 와리산[지금의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목내동]에 있는 어머니 현덕왕후(顯德王后)의 참배 길에 산봉우리를 보고 연꽃처럼 의연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군자와 같다고 하여 '군자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이후 군자산으로 오랫동안 불리다가 1871년(고종 8)에 간행된 『경기읍지(京畿邑誌)』에 '군자산' 대신 ‘군자봉'이라는 명칭이 사용되면서 군자봉으로 불리게 되었다.
[자연환경]
군자봉은 바다와 육지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는 자리에 있다. 군자봉에서는 인천 앞바다에서 시화호를 거쳐 남양만 일대까지, 육지로는 소래산과 수리산이 이어지는 지금의 시흥시 북부·안양시 동부·안산시 북부 지역을 살필 수 있다.
[현황]
군자봉(君子峰)은 높이 198.4m의 나지막한 산이지만, 바다와 평평한 해안 들판에 불쑥 산봉우리가 솟아 있어 높게 보이는 산이다. 산 정상에는 성황제의 신목인 느티나무와 군자 성황사지(君子城隍祠址)가 있으며, 매년 음력 10월 3일에는 시흥 군자봉 성황제가 열려 시민들이 찾는 영험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군자봉 아래에는 아홉 우물 전설이 있는 구지정마을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9년 동안 마을에 가뭄이 있었는데, 아홉 군데 우물을 판 이후부터는 마을에 가뭄이 없었다고 한다. 구준물로도 불리는 구지정은 물맛이 좋기로 정평이 난 장수 마을로 2013년 당시 우물 한 곳이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폐정되었다. 구지정마을은 다시 양지편, 큰말, 아랫말로 나뉜다.
그중 큰말에서는 2004년 고인돌이 발견되기도 하였는데, 마을 사람 중에는 어린 시절 부모님들이 고인돌에 고사를 지내거나 닻줄을 대기도 한 기억이 남아 있었다. 지금은 거모동 산들공원으로 옮겨져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무엇보다 구지정마을 사람들은 고려시대에 시작되었다는 시흥 군자봉 성황제의 주축이 되어 보존회를 구성하고 성황제를 주관해 오고 있다. 성황제는 매년 음력 10월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과 그의 부인 안씨의 애절한 사연을 기원으로 하는 성황당제(城隍堂祭)이며, 산 정상에 있는 성황목인 느티나무에서 이루어진다. 마을을 떠나 외지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성황제가 있을 때는 이곳에 와 제의에 참여할 정도로 주민들이 한마음이 되어 시흥 군자봉 성황제를 계승하고 있다.군자봉에는 시흥시청 마당에서 출발하는 늠내길[숲길]이 산책로로 개발되어 있어 수도권 시민이 찾는 트레킹 코스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