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900305
한자 蘇萊面
영어공식명칭 Sorae-myeou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경기도 시흥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우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1914년 - 인천부 신현면·전반면·황등천면에서 부천군 소래면으로 개편
개정 시기/일시 1973년 - 부천군 해체 및 부천군 소래면에서 시흥군 소래면으로 편제
개정 시기/일시 1980년 - 시흥군 소래면에서 시흥군 소래읍으로 승격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9년 - 시흥군 소래읍·수암면·군자면이 통합되어 시흥시로 승격

[정의]

현재의 경기도 시흥시를 포함하는 옛 행정구역.

[개설]

소래면(蘇萊面)은 지금의 시흥시 대야동, 계수동, 신천동, 방산동, 포동, 미산동, 은행동, 안현동, 매화동, 도창동, 금이동, 과림동, 무지내동 일대와 경기도 광명시 옥길동, 부천시 옥길동·계수동 등이 포함된다.

[관련 기록]

문헌상으로는 1486년 발간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1861년 제작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1919년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지형도 등에 모두 '소래(蘇來)'로 표기되어 있다.

[내용]

소래라는 지명은 지형이 ‘소라처럼 생겼다.’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이 지역의 ‘냇가에 숲이 많다.’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또한 ‘솔내’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지형이 좁다.’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한편, 소래가 산처럼 ‘뾰족하게 튀어나온 곳’을 뜻하는 우리 옛말 ‘솔’에서 나온 지명이라는 설도 있는데, ‘높은 곳’을 뜻하는 우리말 ‘수리’에서 모양이 바뀐 것으로 보는 설도 있다. 결국 소래라는 이름은 순수한 우리말의 변형으로 지금 쓰이는 한자의 뜻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시흥시 방산동에는 벽돌을 이용하여 만든 통일신라 가마터로 사적 제413호로 지정된 시흥 방산동 청자와 백자 요지(始興芳山洞靑瓷-白磁窯址)가 있다.

[변천]

소래면은 원래 인천부(仁川府)신현면(新峴面)[시흥시 신현동·은행동·신천동·대야동·포동·방산동·미산동], 전반면(田反面)[시흥시 매화동·안현동·금이동·도창동], 황등천면(黃等川面)[시흥시 계수동·과림동·무지내동, 부천시 계수동·옥길동, 광명시 옥길동] 지역이었다. 1914년 전국에 걸친 대대적인 행정구역 개편이 단행되면서 부천군 소래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부천군이 해체되면서 시흥군에 편제되었다. 1980년 소래면이 소래읍으로 승격되면서 시흥군 소래읍의 3개 리로 편제되었다.

1983년 시흥군 소래읍 옥길1리·옥길3리는 광명시 옥길동으로, 시흥군 소래읍 옥길2리·옥길4리는 부천시 옥길동으로, 시흥군 소래읍 계수리 일부는 부천시 계수동으로 각각 편입되었다. 이후 1989년 시흥군 소래읍, 수암면, 군자면이 통합되어 시흥시로 승격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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