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2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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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 비보 숲,풍수 비보 숲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
집필자 | 김형준 |
[정의]
전라북도 순창 지역에서 풍수지리적으로 마을의 지기를 보전할 목적에서 조성한 숲.
[개설]
마을 숲은 풍수지리적인 경관을 보완할 목적에서 방비 및 보전 수단으로 조성한 풍수 비보(裨補) 숲이다. 마을 숲의 조성 목적은 비보이다. 비보는 지기(地氣)가 센 곳은 눌러 주고, 허(虛)한 곳은 보(補)한다는 의미의 풍수지리적 용어이다. 비보는 사람에 비유하면, 기운이 센 사람은 기운을 낮춰 주고 기운이 허한 사람은 보약으로 다스리는 이치와 같다.
풍수 비보는 사람이 살아가는 마을 공간을 비보한다는 말인데, 마을 숲은 대체로 마을 입구의 지세가 공결(空缺)하여 마을의 지기가 유실될 것을 우려하여 방비(防備)의 목적에서 조성하는 인공 조림 숲을 말한다. 비보의 수단은 숲을 조성하거나 선돌과 돌탑을 조성하는 방식이다. 전통 마을은 처음 택지를 하는데 먼저 풍수지리를 살폈고, 불완전한 풍수 구도를 완전한 구도로 갖추기 위하여 압승형의 선돌과 돌탑을 세우거나, 마을 입구에 숲을 조성하였다.
[마을 숲의 연원]
마을 숲은 마을의 형성과 함께 조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자연 마을에 조성되어 현재 남아 있는 마을 숲은 17세기 전후에 형성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마을 숲의 역사는 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중국에서 수학한 도선 국사(道詵國師)[827~898]가 풍수지리를 배워 와 국가의 안위를 위하여 호국적인 술책으로 풍수 비보술을 적극 활용하였다. 신라의 국가적 기운이 쇠약해진 것을 안타까워하고, 고려 시대에는 호국 불교의 이념에 따라 비보 사탑 신앙의 술책을 널리 선양하였다. 도선 국사는 전국 도처에 탑과 사찰을 조성하여 불력으로 나라를 살려보겠다는 의도에서 비보 사탑설을 적극 주장하였다. 이러한 풍수 비보 사상은 사찰과 탑이 산간 도처에 조성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비보 풍수는 밀교의 택지법이 고려 시대에 비보 풍수와 결합하여 사회 전반에 확산되었다. 불교의 비보 사탑설은 당간, 석탑, 석불 등 압승형(壓勝型) 석조물들을 조성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는데, 비보 사탑설과 풍수지리설이 조합되면서 조산(造山)과 비보 숲을 조성하는 방식이 등장하였다.
고려 시대에 풍수지리가 성행하면서 불교의 비보 사탑설과 밀교의 택지법이 조합하여 사찰 창건이 융성하였으며, 이러한 택지법과 비보 사탑설이 국도 및 성읍을 조성하는데 풍수지리적으로 적용되었다.
조선 시대에 읍치 풍수(邑治風水)와 마을 풍수에 적용되면서 마을 입구에 수구막이 숲이 조성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수구막이 숲에 조성된 돌탑, 입석 등도 수구막이 숲과 한 세트의 비보 풍수의 장치물이다. 이러한 택지법과 비보 사탑설이 고려 시대에 크게 성행하였으며, 조선 후기 취락 형성이 활발해질 때에도 적용된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변천 과정에서 밀교의 택지법과 비보 풍수가 속신화하여 마을 풍수에서 마을 숲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비보 숲은 조선 후기에 마을 분화가 일어나면서 자연 마을에 적용되었다.
[순창 마을 숲의 특징]
순창은 고려 시대에 문벌 지족들이 세거한 곳이기에 고려 말기에 형성된 마을에서 비보 숲의 전통을 발견할 수 있다. 순창읍에는 남계리 각시 수페[각시 숲]가 있다. 각시 수페에는 성황당 당각시와 닮은 석인상이 있는데, 순창읍의 북쪽 방향이 허결하여 두 석인상을 세우고 숲을 조성하였다. 순창읍의 남계리 각시 수페는 읍치 풍수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팔덕면 산동리 팔왕 마을의 마을 숲도 고려 말기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팔왕 마을은 설씨 부인 관련 전설이 전해 오는데, 마을의 여근곡 지형으로 음양 조화를 목적으로 마을 앞에 마을 숲과 연봉 입석을 세웠다. 순창읍과 팔왕리의 숲을 조성하는 방식이 흡사하다.
동계면에도 구미리 수구막이 선돌과 마을 수호 신석으로 돌 거북을 마을 입구에 배치해 놓았는데, 수구막이 선돌이 있는 곳에 마을 숲이 조성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자취를 발견하기 어렵다. 이러한 정황으로 볼 때, 순창에서는 고려 말기 마을[村]과 읍(邑)에서 동시에 마을 숲을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국도 풍수에서 읍치 풍수로 전환되고, 다시 마을 풍수로 정착하는 단계적 변화 과정을 논리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순창의 마을 숲은 읍치 풍수와 마을 풍수가 동시에 병행되었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마을 숲은 마을이나 고을을 택지하고 조성하는 과정에서 풍수지리적으로 결함이 있으면, 다양한 풍수 비보 장치를 하는데 비보 숲의 조성이 한 방편임을 알 수 있다.
[순창 마을 숲의 기능]
마을 풍수의 기본은 배산 임수의 형식이다. 배산 임수는 마을의 뒷산에서 물이 마을을 에워싸고 마을 앞으로 흘러 내려가는 형국이다. 마을을 가운데에 두고 좌우에서 흘러내려 오는 물줄기가 마을 입구에서 합수하는데, 그곳을 수구막이라고 부르고, 수구막이는 물을 흘러 보내고 지기를 보전할 목적에서 인공 숲을 조성한다.
순창에서 마을 숲의 기능은 대개 화재막이 숲과 수구막이 숲으로 구분된다. 화재막이 숲은 마을 앞산에서 화기가 마을에 비치는 것을 차단할 목적에서 가림막 기능을 하는 숲을 말한다. 수구막이 숲은 마을 공간의 지기가 밖으로 유실되는 것을 차단할 목적에서 조성하는 마을 숲을 의미한다. 두 유형이 순창의 마을 숲에서 함께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마을 숲은 제방을 쌓고 조성되는 제방 숲과 마을 입구에 조성되는 수구막이 숲의 두 유형이 있다. 제방 숲은 순창읍 순화리·복실리, 유등면 무수리, 금과면 수양리·남계리, 팔덕면 팔왕리 등이며, 수구막이 숲은 팔덕면 신기리, 인계면 심초리, 금과면 목동리[목동리 이목 마을 숲] 등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복흥면 서마리[서마리 서지 마을 숲]·반월리[반월리 월성 마을 숲]·봉덕리 덕흥 마을 등에서는 진산 숲의 유형도 찾아볼 수 있다. 진산의 지맥이 마을까지 길게 내려온 형국을 보완하는 의미에서 지세에 따라 보완 기능을 하는 비보 숲을 조성하는 방식이다.
이와 같이 순창에서는 다양한 마을 숲이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숲은 일제 강점기에 숲정이라는 이름으로 통일시켜 버린 상황이다. 마을 숲을 속칭 ‘숲정이’라고 부르는데, 숲정이는 ‘숲’과 ‘정(町)’을 조합한 일제 강점기 용어로서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숲의 유형과 특징에 따라 본래 고유의 기능과 의미에 따라 수구막이 숲, 화재막이 숲, 진산 숲 등 고유성을 찾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