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7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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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龜巖亭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1028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현우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01년 - 구암정 중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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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90년 6월 30일 - 구암정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31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구암정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현 소재지 | 구암정 현 소재지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1028 |
성격 | 누정 |
양식 | 팔작지붕 기와집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2칸 |
소유자 | 남원 양씨 대종회 |
관리자 | 남원 양씨 대종회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에 있는 개항기에 중건된 누정.
[개설]
구암정(龜巖亭)이 있는 만수탄(萬壽灘) 천변은 순창 출신의 덕망 높은 선비인 양배(楊培)가 노닐던 곳이다. 양배의 자는 이후(而厚), 호는 구암(龜岩)으로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戊午士禍)와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甲子士禍)로 무고한 사람들이 억울하게 화를 당하는 것을 보고, 순창의 강호(江湖)에 낙향하여 아우 양돈(楊墩)과 함께 만수탄에서 고기를 낚으면서 세상 시름을 잊고자 하였다. 지금까지도 적성강(赤城江) 상류 만수탄에는 양배와 양돈 형제가 고기를 낚던 바위가 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이 바위를 일러 배암(培巖) 또는 돈암(墩巖)이라 부르며, 이 둘을 합쳐서는 형제암(兄弟巖)이라고도 한다.
[위치]
구암정이 위치한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의 ‘구미(龜尾)’는 거북 형상의 바위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는 남원 양씨(南原楊氏)의 종가를 중심으로 형성된 가운데골[中洞], 동쪽 마을인 장작골[龍洞], 서쪽 마을인 뒤주골[注書洞] 등 총 3개 마을을 통칭하는 것이다. 뒤주골 남쪽 길가에 있는 거북 바위를 지나 동남쪽의 섬진강 상류인 만수탄 위에 구암정이 자리하고 있다.
[변천]
구암정의 정확한 창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6세기 초로 짐작하고 있다. 양배가 세상을 떠난 후 사림(士林)에서는 지계 서원(芝溪書院)을 건립하여 배향해 왔으나, 1868년(고종 5) 서원 철폐령에 의해 서원이 철거되자 이를 안타까워한 후손들이 양배의 덕망을 흠모하고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1901년 구암정이 원래 있던 자리에 정자를 중건(重建)하여 현재까지 보존해 오고 있다.
[형태]
구암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가운데 1칸의 방이 가설되어 있다.
[현황]
구암정 일대의 아름다운 주변 경관을 서술한 「구암정기(龜巖亭記)」를 보면, 맑은 만수탄의 물 흐름에 주변의 특출한 세 봉우리가 감지된다. 이러한 경치를 정면으로 굽어볼 수 있는 곳에 구암정의 터를 잡았기 때문에 경치가 매우 뛰어나다. 예전에는 정자 둘레에 수십 그루의 오동나무가 있었다고 전하나, 현재는 배롱나무가 심어져 있을 뿐이다. 또한 구암정 뒤쪽으로는 두 봉우리가 높이 솟아 있다. 2013년 현재 구암정의 정면을 제외한 삼면에는 나지막이 돌담이 둘러져 있고, 경내로 들어가려면 문을 통해야만 한다. 1990년 6월 30일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3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남원 양씨 대종회에서 관리한다.
[의의와 평가]
양배의 아우인 양돈이 뒷날 인근 임실군 삼계면 세심리로 옮겨 살며 세운 광제정(光霽亭)과 형의 정자인 구암정은 두 형제의 풍류가 녹아든 장소성의 중심 공간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