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13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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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音樂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이서영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에서 소리를 소재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
[개설]
순창은 예부터 풍류를 즐기던 고장이다. 조선 후기 8대 명창 중 4명의 명창을 배출한 판소리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순창은 풍류의 고장답게 현재도 국악의 맥이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현대 음악은 학교 교육을 통해 보급되어 왔으며, 1970년대 이후 학교 밴드부와 합창단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각 지역 경연 대회의 활성화로 발전하였다. 또한 성당이나 교회에서 해마다 성가 음악이나 청소년 음악회를 통해 일반 사회에 현대 음악을 전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근래에 미디어가 발달함에 따라 대중음악이 발전하게 되면서 국악과 현대 음악이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대중음악이 활성화되는 추세를 순창 지역도 따르고 있다.
[국악]
1. 민요
1860년(철종 11)에 이세보(李世輔)[1832~1895]의 아버지 이단화가 순창 군수로 부임할 때, 이세보가 아버지를 찾아와서 순창 지역을 유랑하면서 8수의 시조를 지어 『풍아(風雅)』라는 시조집에 남겼다. 이외에 순창의 민요로 김은용이 노래한 「순창 관광」,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1510~1560]의 「자연가」를 비롯해 쌍치면 영광정(迎狂亭)을 배경으로 독립의 열망을 담은 「팔광가」, 홍성문 대사의 「회문산가」 등이 있다. 또 아이들이 부르던 「사랑방 노래」를 비롯해 「적성가」, 「은어회 노래」, 「화항 팔경」 등도 있다. 순창군의 민요는 시조에 곡을 붙여 노래를 부른 것이 많으며, 듣는 이로 하여금 순창의 명승(名勝)을 절감하게 한다.
순창군의 유명한 민요로는 「금과 들소리」가 있다. 「금과 들소리」는 500여 년을 이어온 농요로, 2005년 3월 11일에 전라북도 무형 문화재 제32호로 지정되었다. 「금과 들소리」의 특징은 첫째, 김매기 과정에 따른 곡조의 분화가 다채롭다는 점, 둘째, 음계와 선법(旋法)이 판소리의 우조(羽調) 및 계면조(界面調)와 일치하며 이 두 가지 음조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점, 셋째, 전라북도 서부 평야 지역의 주요 가창 방식인 선후창(先後唱) 방식과 전라북도 동부 산악 지역의 주요 가창 방식인 교환창(交換唱) 방식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점, 넷째, 기식음(氣息音)[하·허·흐·해·후·히]을 많이 사용하여 씩씩하고 힘찬 느낌을 나타낸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2. 판소리
순창군은 조선 후기 8대 명창 중 네 명의 명창을 배출한 명실상부한 판소리의 본고장이다. 서편제(西便制)의 창시자 박유전(朴裕全) 명창, 동편제(東便制)의 독보적 존재인 김세종(金世宗) 명창, 김세종 명창의 맥을 이은 장재백(張在伯) 명창,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명맥을 이은 장판개(張判介) 명창은 순창에서 소리를 배우고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은 박유전에게 “네가 제일강산이다”라고 극찬하며 선달 벼슬과 강산이라는 아호를 하사하였다고 한다. 김세종은 송흥록(宋興祿) 명창과 더불어 동편제의 또 다른 독보적인 존재로 창악(唱樂)에 대한 비평과 이론에 뛰어났다.
김세종은 순창군 구림면 동정자 출생인데[동계면 출신으로 기록된 곳도 있음], 양반 집안에 소리꾼이 생기자 그 마을에서 살지 못하고 순창읍 복실리로 이사해서 살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혹은 순창군 순창읍 복실리에서 나서 소리를 하였으며, 서울에서 내려올 때 젊고 예쁜 기생 하나를 데리고 와 팔덕면 월곡리에서 살다가 죽었다고도 한다. 장판개는 순창군 금과면 내동리 연화 마을 출신[곡성 출신이라는 설도 있음]으로 최하의 저음에서 최상의 고음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적벽가(赤壁歌)」 중 ‘장판교 대전(長坂橋大戰)’과 군사 설움을 그린 ‘사친가’에서 뛰어나 고종(高宗)으로부터 혜릉 참봉 교지를 받았다. 이외에 박장근(朴長根)은 순창군 순창읍 장덕리 출신의 고수로서 전국에 이름을 떨쳤다. 순창군 순창읍 장덕리 출신의 박금앵(朴錦鶯)은 18세 소녀 시절에 명창 대회에 출전하여 적성면 매미 터에서 소리를 배운 이화중선이 1등, 박금앵이 2등을 차지할 정도로 유명하였다.
순창군은 동편제와 서편제의 발원지로서, 섬진강을 중심으로 동편에서는 동편제가 서쪽에서는 서편제가 섬진강 줄기 적성강을 끼고 번성하였다. 적성강 주변을 비롯해 순창군 적성면 매미 터, 금과면 삿갓데, 동계면 숙대미, 복흥면 마재 등에서는 소리꾼들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순창군의 소리는 우리나라 판소리의 기초가 되었으며, 서편제 박유전의 소리와 장재백의 소리가 합해져 판소리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보성의 소리를 만들었다.
3. 순창 국악 대전과 순창 국악원
순창군의 풍류가 이어졌던 이유는 선비라면 거문고나 가야금, 퉁소 등의 악기 중에서 한 곡조 정도는 알아야 한량으로 여겼던 풍조 때문이다. 이를 잘 보여 주는 것이 해산 임인주이다. 임인주는 일제 강점기에 면장[인계면·순창읍 등]을 18년간 지냈으며, 사군자(四君子)와 서예에 능통하였고 양금(洋琴), 원금(爰琴), 호적(胡笛), 대쟁(大箏) 등 15개 종류의 악기를 잘 다루었다. 임인주가 흥이 나서 소리를 내면 듣는 사람들의 흉금이 상쾌해졌다고 한다. 임인주가 갖고 있던 가야금은 종류별로 여덟 개 정도였으며, 거문고는 여섯 개, 퉁소는 열한 개 등 총 60여 악기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순창군에서는 전국 대회인 순창 전국 국악 대전이 해마다 열리고 있다. 2000년도부터 중간에 한 번 빠져 2013년 현재까지 총 12회가 개최되었다. 순창 전국 국악 대전은 백제 남도 소리 고법 진흥회가 주최하고, 백제 남도 소리 고법 진흥회 순창군 지부가 주관한다. 대한민국 국회와 문화 체육 관광부, 전라북도, 전라북도 의회, 순창군, 순창군 의회 후원으로 열리고 있다. 순창 전국 국악 대전은 각 부문 대상에 문화 체육 관광부 장관상이 주어지는 큰 대회로, 전국에서 많은 국악인들이 참여하여 판소리의 고장인 순창군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순창군 순창읍 남계리에 있는 순창 국악원에서는 국악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신인을 발굴·후원하고 있다. 2013년에는 대취타대를 창단하여 조선 시대부터 내려오던 취타(吹打)를 발굴하여 군민 행사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현대 음악]
순창군에서 현대 음악을 접할 수 있었던 곳은 학교와 교회 등의 종교 단체였다. 1970년대 중반쯤 교회에 피아노가 보급되면서 교회에서 피아노를 치던 반주자들이 이후 개인적으로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순창군 최초의 음악 교습소는 피아노 교습소이다. 1970년대 초반에 최승희가 개인 집에서 피아노를 가르쳤고, 최승희의 제자 중 몇몇이 역시 개인적으로 집에서 레슨을 하다가 최승희 피아노 학원으로 등록하여 순창군에 최초의 피아노 학원이 생기게 되었다.
197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는 피아노 전공자나 음악 전공자들이 가르치지 않았지만, 그 후로 순창군에서도 음악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학원을 내기 시작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국가 방침인 방과 후 학교를 통해 순창군과 같은 시골에서 다룰 수 없는 바이올린이나 관현악 등의 악기를 가르치게 되면서 순창 어린이 관현악단 사업이 시행되기도 하였다. 밴드부 출신의 정봉남에 의하면, 1970년 중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순창 고등학교의 관현악단[밴드부]이 활동하며 학교 행사 및 군내 행사에서 연주하였다고 한다.
순창 여성 합창단은 2002년에 창단되었다. 노래를 사랑하고 음악에 관심 있는 20~60대까지의 순창군 거주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합창 연습을 하고 있다. 순창 여성 합창단은 전라북도 페스티벌 합창 부문에서 2013년에 이어 2014년에도 대상을 받았으며, 이 밖에도 제6회 휘센 합창 페스티벌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순창 여성 합창단은 도내 대회 및 전국 대회 준비는 물론 평소 군내에서 개최되는 각종 자체 행사에 참가하여 공연하고 있으며, 복지 시설 등에서 자원 봉사 활동도 연중 추진하고 있다. 또한 순창군에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생긴 다문화 가정 여성 시조(時調) 합창단도 있다. 일본·필리핀·태국의 결혼 이주 여성과 한국 여성 등 4개국 20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밖에도 순창군 여성 농민회의 청보리 합창단도 있으며, 플루트나 오카리나 등을 다루는 소수 그룹의 현대 음악 소모임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대중음악]
순창 고등학교 밴드부원으로 활동하였던 사람들은 순창군이 문화적으로 낙후되었다고 생각하여, 음악으로나마 지역민들에게 봉사하기 위하여 2009년도에 밴드를 결성하여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이 현재 순창 음악 협회 회원들인데, 초창기 회원 임형락·장동환·정봉남·김찬희·이옥선 등이 기타·베이스·드럼·키보드·색소폰을 가지고 연주를 시작하였다. 순창 음악 협회에는 현재 20여 명의 회원들이 있는데, 회원들은 매년 봄가을에 강천산에서 숲 속 작은 음악회를 개최하고, 매년 10월 31일 10월의 마지막 밤을 순창 군민들과 함께하기 위하여 ‘군민들과 함께하는 작은 음악회’라는 이름으로 거리 음악제를 개최하고 있다.
순창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가수로는 읍·면 노래 강사인 공옥자가 순창군에 거처를 둔 유일한 가수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또 지금은 활동을 하지 않지만, 순창 의료원 노래 치료 강사로 각 마을을 찾아다니며 노래하던 김예진이 있었다. 이 밖에도 순창군에서 부모를 모시고 전라북도에서 활동하고 있는 가수 보결이 있다.
순창군 출신의 가수로는 가수이자 작곡가인 임종수를 들 수 있다. 임종수는 전국 노래 자랑 심사 위원으로 1980년부터 1995년까지 활동하였다. 한국 트로트계의 대부로 알려진 임종수는 1972년에 나훈아의 「고향역」을 작사·작곡을 하며 이름을 널리 알렸다. 이어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빈 지게」, 「남자라는 이유」, 「옥경이」, 「사랑하며 살 테요」 등 트로트 400여 곡을 작곡하였다. 순창군 명예 홍보 대사인 임종수는 2012년 제19회 대한민국 연예 예술상에서 특별 공로상을 수상하였다. 임종수는 고추장을 담아 밥상에 올려 밥을 비벼 주었던 할머니의 사랑과 향수를 생각하면서 고추장을 소재로, 「목포의 눈물」이나 「칠갑산」과 같이 지역을 대표하는 대중가요를 구상하고 있다.
또한 순창군 출신의 가수이자 배우인 신신애가 있다.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노래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신신애는 순창군 순창읍 출신으로, 배우 활동을 하다가 지금은 주로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이외에 순창군 출신으로 서울특별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가수로는 「사랑꽃」을 노래한 김재필과 가수 우혁[본명 우동식], 「봄날이 온다」의 전영월, 임종수가 가르치고 있는 「말 좀 해 봐요」의 강문경 등을 비롯해, 순창 중학교를 졸업한 ‘철이와 미애’로 유명한 가수 신철이 있다.
최송은 순창 고등학교 밴드부 출신으로 1983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음악 활동을 하다가, 1995년 제13회 목포 난영 가요제에서 「적도」를 불러 최우수상을 받으면서 가수로 데뷔하였다. 여성스런 남자의 고음 목소리에 풍부한 성량을 지닌 최송은 애절한 감성을 자극한 「상심」, 「체념」 등의 트로트를 불렀다. 하지만 2012년 49세의 나이에 담도암에 걸려 단명하였다. 수아[본명 김상수]는 광주 MBC 라디오에서 노래 제목 맞추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문화 센터 등에서 노래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2014년 제28회 광주 연극제에서 「얼음꽃 피는 날」의 주연으로 뮤지컬 공연을 하기도 하였다.
순창군을 소재로 한 노래로는 순창읍 출신 시인 권일송의 시 「애향의 노래」와 「향우」를 임종수가 작곡·노래한 것이 있다. 이는 「순창 군민의 노래」와 함께 한 테이프에 수록되어 있다. 또 강천사(剛泉寺)를 노래한 음반[2003년]도 있는데, 순창군 금과면 출신인 전규철이 작사·작곡하여 임선희가 노래하였다. 「강천사」는 가슴 뭉클한 그리움 속에 구슬픈 애절함이 깃든 노래로, 순창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래 이벤트 사장 최일용이 기획하여 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