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16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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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淳昌忠信里石長丞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유적/민간 신앙 유적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장류로 407-11[남계리 966-7]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형준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9년 1월 26일 - 순창 충신리 석장승 국가민속문화재 제101호로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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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순창 충신리 석장승 국가민속문화재 재지정 |
이전 시기/일시 | 2004년 12월 - 순창 충신리 석장승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순화리에서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남계리로 이전 |
현 소재지 | 순창 충신리 석장승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장류로 407-11[남계리 966-7] |
성격 | 석인상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순창 군수 |
문화재 지정 번호 | 국가민속문화재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남계리에 있는 석인상.
[개설]
순창 충신리 석장승은 순창 남계리 석장승[국가민속문화재 제102호]과 한 쌍으로, 풍수 비보(裨補) 기능을 하는 미륵불과 성황(城隍) 신상의 조합형 수호 신상이다. 순창 남계리 석장승이 여성상[각시상]이라면 순창 충신리 석장승은 남성상이다. 두 석장승의 공통점은 불상의 안상(眼狀)과 성황 신상의 얼굴상에 장식된 연지를 장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는 순창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유일한 모습이다. 문화재 안내판에는 석장승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석장승이 아니다. 순창 충신리 석장승은 석장승의 무서운 얼굴 도상과 장군 명문 등 기본적인 요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석장승보다는 석인상에 가깝다.
[위치]
순창 충신리 석장승은 원래 전주에서 순창으로 들어오는 길목인 순창읍 순화리 충신 마을 순창 고등학교 동쪽 담장 아래 세워져 있었다. 이후 2004년 12월 남원과 순창 간 도로를 확장하면서 순창 남계리 석장승과 함께 순창읍 남계리 순창 문화원 건물 뒤 현재의 자리에 마주 보게 옮겨 놓았다. 원래 충신리 석장승이 세워져 있던 곳은 공터로 남아 있다.
[형태]
순창 충신리 석장승은 선돌형 석상이다. 석인상의 크기는 높이 184㎝, 넒이 50㎝, 두께 30㎝ 암석에 안상만 조각되어 있다. 안상(眼象)은 이마에 백호를 복록형으로 장식하고, 눈은 가늘게 뜬 눈으로 표현하여 마치 부처의 안상을 보는 듯하다. 양 볼에는 연지 장식처럼 볼록형 장식을 하였다. 선돌의 전면 상단에 얼굴상을 조각한 것 외에 다른 장식이나 명문은 없다. 이 석인상은 미륵불과 성황 대왕상을 조합한 석인상을 조각한 모습으로 추정된다.
[의례]
풍수 비보 기능으로 세워 놓은 석상인 만큼 의례의 대상으로 섬기지는 않는다.
[현황]
순창읍으로 들어오는 순창-남원 간 도로와 전주-순창 간 도로를 확장하면서 2기의 석인상을 현재 순창 문화원 건물 뒤 공터를 공원으로 조성해 놓고 그곳에 옮겨 놓았다. 순창 충신리 석장승과 순창 남계리 석장승은 순창의 역사를 입증하고 순창에서만 볼 수 있는 전국 유일의 석인상이지만 제 위치에 있지 못해 제 기능을 못하고 방치된 것이나 다름없다. 더구나 옛 모습은 사라지고 전면이 새까맣게 변해 가고 있는 상태이다. 순창 충신리 석장승은 1979년 1월 26일 국가민속문화재 제10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민속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순창 충신리 석장승은 순창 고을의 비보 풍수와 미륵 신앙, 성황 신앙이 짙게 배어 있는 순창 문화의 상징성을 가진 석상이라 할 수 있다. 순창 충신리 석장승과 순창 남계리 석장승은 고려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순창읍의 북쪽이 허하여 이산과 금산 사이에 2기를 서로 마주 보게 세워 놓고 숲을 조성하여 북쪽의 허한 기운을 차단할 목적에서 세운 석인상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