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20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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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軍警最後攻勢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주철희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55년 7월 1일 - 서남 지구 전투 경찰대 마지막 빨치산 토벌 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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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결 시기/일시 | 1956년 11월 31일 - 서남 지구 전투 경찰대 마지막 빨치산 토벌 종결 |
성격 | 빨치산 토벌 사건 |
관련 인물/단체 | 서남 지구 전투 경찰대 |
[정의]
1955년 7월 1일부터 1956년 11월 31일까지 전라북도 순창 지역의 빨치산을 대부분 소멸시킨 군경의 마지막 공세.
[역사적 배경]
1951년 12월부터 1952년 3월까지 진행된 백선엽이 중심이 된 백야전 사령부의 빨치산 토벌 작전과 1953년 12월부터 1954년 3월까지 진행된 제5사단장 박병권 전투 사령부의 동계 공세로 빨치산의 실질적 부대는 큰 타격을 받았다. 이윽고 1954년 4월부터 시작된 한신 전투 사령부의 서남 지구 공비 토벌 작전에 의해 전라북도 빨치산은 실질적으로 거의 소멸하였다. 그러나 순창 지역의 회문산과 덕유산 등을 중심으로 소규모 잔존 부대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경과]
서남 지구 전투 경찰대는 1955년 7월부터 1956년 11월까지 국군 주도의 빨치산 토벌 작전을 인계 받아 마지막 공세를 펼쳤다. 1955년 3월 6일 현재 치안국에서 발표한 빨치산 잔존 부대와 이름을 살펴보면, 서남 지구 전투 경찰대 관하 남원군당 위원장 박양기와 동 지도원 강철, 전라북도 덕유산 지구 항미 연대[기존 제1유격대] 지도책 박판쇠[45세], 68부대장 강진복[27세]과 동 대원 김수만[22세], 최기선[27세], 고삼진[22세], 김화자[여, 26세], 김인수, 후방 주임 송인수[46세], 동 대원 오학관[오영관][20세], 박은수[29세], 서해경[25세], 이철준, 김군자[여, 17세] 등이었다.
회문산 지구에는 전북도당 남부 지도부 지도원 이종만[32세], 동 대원 김용만[27세], 김병호[20세], 이용천[19세], 김성태[29세] 등이 잔존하고 있었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치안국에서 파악한 잔존 빨치산은 잔존자 중 극히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결과]
순창 지역 회문산 지구에서 활동한 전북도당 부위원장 겸 남부 지도부 지도원 이종만은 1955년 3월 7일 정읍에서 경찰과 전투 중 생포되었다. 이때 조직책 김용태[28세], 이용찬[20세], 김명호[21세] 등도 함께 생포되었다.
[의의와 평가]
이처럼 군경의 공세로 1955년 말에 이르러 전라북도 빨치산은 공식적으로 완전히 토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