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04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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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桐華寺大雄殿木造釋迦三尊佛坐像 |
영어공식명칭 | Wooden Seated Buddha Triad at Daeungjeon Hall of Donghwasa Temple |
영어음역 | Wooden Seated Buddha Triad at Daeungjeon Hall of Donghwasa Temple |
영어공식명칭 | Wooden Seated Buddha Triad at Daeungjeon Hall of Donghwasa Temple |
분야 | 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 동화사길 208[대룡리 282]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장모창 |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 동화사 대웅전에 봉안된 조선 후기 불상.
[형태]
동화사는 『조선사찰사료(朝鮮寺刹史料)』의 「전낙안군개운산동화사중창기(前樂安郡開雲山桐華寺重創記)」에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1055~1101]이 창건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경내의 삼층석탑이 고려 초기 석탑으로 추정되어 사찰의 창건은 대각국사 의천이 아닌 고려 초기로 생각된다. 동화사는 정유재란 기간에 파괴되어 1601년(선조 34) 신총(信聰)이 대웅전을 건립한 후, 1630년(인조 8) 계환(戒環)이 중창하였으며, 1662년(헌종 3)에 희안(熙安)과 법홍(法弘) 등이 호선루 건립과 기와 불사를 하였다.
동화사 대웅전 목조석가삼존불좌상은 각각의 불상에서 조성 발원문과 석가모니불 대좌 묵서가 남아 있어 이 불상들이 순치사년(順治四年)인 1657년(효종 8)에 화원(畵員) 계찬(戒贊), 인계(印戒), 영언(英彦), 정민(淨敏), 성율(性律), 사민(思敏), 종협(宗冾) 등 7명이 제작한 불상임이 밝혀졌다.
동화사 대웅전 목조석가삼존불좌상은 높이가 115㎝, 무릎 너비가 78.0㎝인 중대형불상이다. 동화사 대웅전 목조석가삼존불좌상은 상체를 앞으로 조금 내밀어 자세가 구부정하다. 머리에는 뾰족한 나발(螺髮)과 경계가 불분명한 육계(肉髻)가 있고, 이마 위에 반원형의 중앙계주(中央髻珠)와 정수리에 윗부분이 둥글고 낮은 원통형의 정상계주(頂上髻珠)가 있다. 방형의 얼굴에 가늘게 뜬 눈은 눈꼬리가 약간 위로 올라갔고, 코는 오뚝하고, 입은 살짝 미소를 띠고 있다.
착의법은 군의(裙衣)[허리에서 무릎 아래를 덮는 긴 치마 모양의 옷], 승기지(僧祇支), 대의(大衣)[설법하거나 걸식을 할 때 입는 승려의 옷]가 갖추어져 있는데, 가장 바깥에 입은 대의는 변형된 편단우견으로 착용하였다. 대의는 오른쪽 어깨에 걸쳤으며, 목 밑에서 팔꿈치까지 완만한 곡선으로 늘어지고 팔꿈치와 배를 지나 왼쪽 어깨로 넘어간다. 좌측 어깨 정 측면에는 왼쪽 어깨로 넘겨진 대의 자락이 자연스럽게 어깨에서 무릎까지 흘러내리고 있다. 승각기는 상단을 수평으로 접고 앞으로 둥글게 처리하였다. 수인은 오른손을 무릎 밑으로 내려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두 번째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는 모양]을 하고 있고, 왼손을 자연스럽게 무릎 위에 올려놓고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다.
하반신은 어깨에 비례하여 넓고 높아 안정감을 주고 있으며, 오른쪽 다리가 왼쪽 무릎 위에 올라와 있다. 다리 위에 조각된 옷 주름은 호형의 양각선으로 우측에 5줄, 좌측에 4줄이 비대칭적으로 묘사되어 있고, 하단은 물결무늬가 고부조로 표현하였다.
양 협시불인 아미타여래와 약사여래는 본존인 석가여래와 같이 조선 후기 전형적인 불상 양식을 취하고 있다. 석가여래와 약사여래는 이목구비에서 풍기는 인상이 비슷하지만, 아미타여래는 턱이 이마보다 아주 좁고 인상에서 앞에서 언급한 불상과 차이가 있다. 또한, 오른쪽 어깨에 걸친 대의 자락은 석가여래와 약사여래가 어깨에서 팔꿈치까지 완만한 곡선으로 처리되어 있지만, 아미타여래는 가슴까지 내려와 물방울 같은 ‘U’자형으로 마무리하였다. 왼쪽 무릎을 감싸고 있는 소맷자락은 석가여래와 약사여래에는 조각되지 않았지만, 아미타여래는 끝자락이 날카롭게 처리되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아미타여래와 약사여래의 배 부분에서 복견의와 대의 자락이 접히는 표현이 나타나야 하는데, 약사여래와 같이 거의 수평으로 단을 이루며 접힌 형태는 조선 후기 기년명 불상에서 볼 수 없는 요소이다. 특히 협시불이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지 않고,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엄지와 중지를 맞댄 자세와 방향도 같아 기존의 삼존불에서 거의 볼 수 없었던 요소이다.
[특징]
계찬이 수화승으로 만든 동화사 대웅전 목조석가삼존불좌상은 오른쪽 어깨에 늘어진 대의 자락을 반원형과 ‘U’자형으로 처리하고, 결가부좌한 하반신 중앙에서 펼쳐진 단순한 옷자락의 표현은 조각승 승일이 만든 불상을 계승한 것이며, 하반신에 뾰족하게 사선을 그리며 늘어진 소맷자락은 승일이나 희장이 만든 불상의 요소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승기지의 표현이나 복견의을 입어 대의와 겹쳐진 부분의 비현실적인 처리 등은 계찬이 만든 불상에서만 볼 수 있는 요소가 보여 사승관계에 따른 영향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의의와 평가]
동화사 대웅전 목조석가삼존불좌상은 조선 후기에 동화사 대웅전에 봉안하기 위해 계찬 등 9명의 조각승이 조성한 불상으로 조성 연대[1657]와 조각승 시주자 등을 알 수 있고, 불상의 조각적 특징도 분명히 드러나고 있어 17세기 전반기의 전라남도 지역 불상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될 뿐만 아니라 계찬이 수화승으로 참여한 유일한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가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