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04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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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仙巖寺 祖師眞影 |
영어공식명칭 | Portrait of Buddhist Monks in Seonamsa Temple |
영어음역 | Portrait of Buddhist Monks in Seonamsa Temple |
영어공식명칭 | Portrait of Buddhist Monks in Seonamsa Temple |
분야 | 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450[죽학리 802]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장모창 |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선암사성보박물관에 있는 고승 초상화.
[형태 및 구성]
순천 선암사에는 총 50인의 진영이 선암사 진영당과 대승암 영각 등에 봉안되었지만, 현재 24명의 진영이 선암사성보박물관에 전해진다. 봉안 대상은 절의 창건주, 중충주, 순천 선암사의 고승들이 대부분이다. 이 외에도 순천 선암사의 사격을 높이고 법통을 적립하는 과정에서 제작하여 상징적으로 봉안했다.
선암사 조사진영은 크게 4가지 형식으로 나눌 수 있는데 1형은 바닥과 배경을 구분하지 않고 진영을 그린 고식의 진영제작 형식이고, 2형은 과도기적 양식으로 배경과 바닥을 구분하려고 했지만,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형식의 진영이다. 3형식은 바닥과 배경을 돗자리로 구분하여 진영을 그린 경우이다. 4형식은 조선 말에서 근대에 조성된 진영들로 정해진 형식이 없이 자유롭게 그려진 진영들이다.
1형식의 진영은 「호암당대선사진영(護巖堂大禪師眞影)」과 「동악당재인대선사진영(東岳堂大禪師眞影)」이 대표적이다. 「호암당대선사진영」은 바닥과 벽면을 구분하지 않고 의자에 가부좌를 하는 모습이며 오른쪽을 향하고 있다. 「동악당재인대선사진영」은 바닥에 ‘건륭 삼 년 계해 이월일(乾隆三年癸亥二月日)’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1743년(영조 19)에 제작된 진영임을 알 수 있다. 우측을 향하고 있는 측면상으로 오른손에는 염주를, 왼손에는 어깨 위로 올린 긴 불자를 주고 바닥에 가부좌하고 있다. 이 외에도 「소요당대화상진영(逍遙堂大和尙眞影)」, 「호암당체대선사체정진영(虎巖堂大禪師體淨眞影)」 등이며, 제작 시기는 대부분 19세기 초반 이전이며, 고승의 활동 시기도 모두 18세기 이전이다.
2형식의 진영은 「대각국사진영(大覺國師眞影)」과 「서악대화상진영(西岳大和尙眞影)」이 대표적이다. 「대각국사진영」은 아래에 화기가 기록되어 있어 1805년에 화사 도일이 제작했음을 알 수 있다. 대각국사가 향 우측을 바라보며 의자에 앉아 있는 상이다. 오른손은 팔걸이를 잡고 있으며, 왼쪽 어깨에 주장자를 걸치고 있다. 배경과 벽면은 바닥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4개의 돗자리와 답상(踏床)으로 바닥임을 나타내고자 하였으나 불안정하게 표현되었다. 「서악대화상진영」은 일반적으로 의자좌가 보여주는 진영의 형태를 하고 있으나 의자나 바닥 쪽에 놓여 있던 화문석을 의자 안쪽에, 그것도 한쪽으로 받혀 넣어 바닥과 배경을 돗자리로 구분하려고 하였으나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한 것 같다. 이 외에도 「정파당대선사진영(靜波堂大禪師眞影)」과 「월암당대선사진영(月巖堂大禪師眞影)」 등이 있으며 제작 시기는 19세기 초반에 주로 제작되었다.
3형식의 진영은 「해붕당대화상진영(海鵬堂大和尙眞影)」과 「금암당대선사천여진영(錦庵堂大禪師眞影)」이 대표적이다. 「해붕당대화상진영」은 돗자리로 바닥과 배경을 구분하고, 왼쪽을 향하고 있는 의자상의 진영이다. 「금암당대선사천여진영」은 돗자리로 바닥과 배경을 분리하였으며, 화엄경이 놓여 있는 경상을 배경으로 흰 방석 위에 갈색 장삼과 붉은색 가사를 걸치고 앉아 있다. 이 외에도 「태허당대화상진영(太虛堂大和尙眞影)」과 「철경당영관진영(鐵鏡堂永寬眞影)」 등이 있으며 주로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에 주로 제작되었다.
4형식의 진영은 위패형, 금선묘진영, 군도형식진영, 사진형식진영 등 다양하다. 위패형태의 진영은 1881년 그린 「환월당대종사진영(幻月堂大宗師眞影)」으로 가운데 위패 안에 ‘환월당대종사진영’이라 기록되어 있다. 금선묘진영으로는 흑색 바탕에 금선으로 윤곽선을 그렸으며, 얼굴·목·손만 채색한 「침명당대화상한성진영(枕溟堂大和尙翰醒眞影)」이 대표적이다. 이 금선묘진영은 순천 선암사의 「함명당태선진영(函溟堂太先眞影)」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다. 1905년에 제작된 삼화상 진영은 군도 형식의 진영으로 지공(指空)[?~1363], 나옹(懶翁)[1320~1376], 무학(無學)의 삼화상을 그렸고, 사진형식의 진영은 설산 최광식이 1917년에 그린 「경운대선사진영(擎雲大禪師眞影)」을 포함하여 5점의 진영들이다.
[특징]
선암사 조사진영은 18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약 200여 년 동안 제작되었는데, 18세기에서 19세기 초반에 제작된 진영들은 경물이 전혀 없이 존상만을 표현함으로써 선사의 기백을 느끼게 하는 수작이다. 19세기 중반부터는 진영이 도식화되고 형식화되는 경향을 보이다가 조선 후기에는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금선묘진영이 나타나고, 사진을 보고 진영을 제작한 사진형식의 진영이 제작되는데 이들 진영은 매우 극사실적인 표현이 돋보이는 수작이라 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선암사 조사진영은 다양한 봉안 대상, 시대에 따른 양식변천을 보일 뿐만 아니라 당대를 대표하는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어 조선 후기에서 근대에 이르는 고승진영 연구의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