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05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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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陽川許氏 |
영어공식명칭 | Yangcheon Heo Clan |
영어음역 | Yangcheon Heo Clan |
영어공식명칭 | Yangcheon Heo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욱 |
입향지 | 양천허씨 입향지 - 전라남도 순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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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거|집성지 | 양천허씨 집성지 -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황전면 월산리|주암면 백록리|주암면 궁각리 |
묘소|세장지 | 충열사 - 전라남도 순천시 조례동 |
묘소|세장지 | 세수재 - 전라남도 순천시 순광로 119-16[조례동 150] |
묘소|세장지 | 육충사 -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월산리 |
성씨 시조 | 허선문 |
입향 시조 | 허형 |
[정의]
허선문을 시조로 하고 허형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순천시의 세거성씨.
[연원]
양천허씨는 허선문(許宣文)을 시조로 한다. 허선문은 공암(孔巖)[현 서울특별시 양천구] 지방의 호족으로 고려 태조를 도와서 고려 건국에 공로를 세워 양천허씨 집안의 시조가 되었다. 그로부터 자손들이 중앙에 진출하여 크고 작은 벼슬을 하면서 가세를 이어 갔다. 고려 충렬왕 때 허공(許珙)은 첨의중찬(僉議中贊)으로 수상의 지위에 올랐고 양천허씨는 최대의 벌족으로 입지를 굳혔다. 허공의 막내아들 허부(許富)는 정3품 대언(代言)과 선부전서(選部典書)의 요직을 역임하였고, 족보에는 예문관 대제학을 역임한 것으로 나와 있다. 순천 지역의 양천허씨는 허부의 후손으로 양천허씨 대제학공파에 속한다.
[입향 경위]
양천허씨는 조선 건국 이후에도 오늘날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지동에서 거주하였다. 양천허씨 순천 지역 입향조는 세수재(世守齋) 허형(許亨)[1489~1564]이다. 문중에서는 문정공(文貞公) 허침(許琛)[1444~1505]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연산군의 폭정을 피해 아우인 비인현감 허영(許瑛)과 함께 순천 옥계리로 낙향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자료를 비교하면 기묘사화 이후 정치적 박해를 피해 장인 박증손(朴曾孫)[1496~1573], 동생인 허영 등과 함께 순천 지역으로 내려왔다고 보아야 한다. 허형은 순천 지역에 내려와 세수재를 짓고 학문을 닦았다. 이후 양천허씨에서는 승평사은의 일원인 허엄(許淹)[1538~1610], 허일(許鎰)[1549~1593]을 비롯한 종형제 8명의 의병 활동 등을 통해 순천 지역의 명문가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현황]
1934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된 『조선의 성씨』[『朝鮮の姓』]의 순천군 조에는 양천허씨가 해룡면 조례리에 19세대, 황전면 월산리에 30세대, 주암면 백록리와 궁각리에 35세대 등 84세대가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양천허씨는 1305명이 순천 지역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유적]
1868년 훼철되었다가 1912년 현재의 전라남도 순천시 조례동에 복원된 충열사[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6호]는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허일과 허일의 셋째 아들 허곤, 육촌 동생 허경을 배향하고 있다. 충열사 옆에는 양천허씨의 재실인 세수재가 있다. 순천시 황전면 월산리 자은마을에는 허일과 허일의 다섯 아들[장남 허증, 2남 허환, 3남 허곤, 4남 허근, 5남 허단]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917년에 건립한 육충사(六忠祠)가 있다. 양천허씨 문중에는 허일이 받은 선무원종공신녹권과 각종 교지를 비롯한 고문서도 다수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