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010 |
---|---|
한자 | 義城金城山古墳郡-性格-意義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이형기 |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학미리·탑리리 일대에 있는 삼국 시대의 고분군.
[개설]
금성산 고분군은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에 위치한다. 태백산맥 지맥의 하나인 보현산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린 휴화산인 금성산[높이 531m]의 서쪽 산록에 해당하는 모지산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길게 뻗은 능선과 그 사면에 삼국 시대의 고총과 고분들이 널리 분포하고 있다. 고분군의 중앙부는 군위군 우보면에서 의성읍으로 이어지는 국도 28호선과 중앙선 철도가 지나감에 따라서 현재 1/3로 나누어져 있다. 국도를 중심으로 서쪽은 대리리, 북쪽은 학미리, 남쪽은 탑리리로 행정 구역이 구분되고 있다. 따라서 과거 발굴 된 고분들은 행정 구역상의 위치에 따라 탑리리 고분군 또는 대리리 고분군, 학미리 고분군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는 하나의 고분군으로 보아야 한다. 이에 따라 1998년 경상북도 기념물 제128호로 지정되어 있다.
[금성산 고분군의 위치]
금성산 고분군이 위치한 의성군은 경상북도 내륙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안동시, 북동쪽으로는 청송군, 남동쪽으로는 영천시, 남서쪽으로는 대구광역시 군위군, 북서쪽으로는 상주시와 인접하고 있다. 대부분 산지 지형으로 낙동강으로 유입되는 청계천, 미천, 위천 등의 소하천 변에 형성된 소규모 분지를 중심으로 촌락이 분포하고 있다. 지리상으로는 경주에서 영천을 거쳐 와서 선산·상주·함창, 안동·영주 등 낙동강 상류 지역을 거쳐 소백산맥 이북 지역으로 진출하거나, 역으로 경주 지역으로 가기 위한 최단거리의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이러한 위치 조건은 신라가 이곳을 일찍부터 중요시 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금성산 고분군이 위치한 곳은 신라의 북방 진출의 전초기지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의성 지역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적석목곽묘는 비교적 신라가 이른 시기에 이곳을 거점으로 삼았음을 알려주는 것이고, 이 지역에서 출토되는 유물[금동관, 금이식, 은과대, 은장환두대도, 금동신발, 철부]로 말미암아 이러한 역할이 6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학술 조사로 드러난 금성산 고분군의 모습]
금성산 고분군에는 지표 조사 결과로 볼 때 현재 대략 260여 기 정도의 고분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으며, 그 가운데 고분군 서단에 위치하는 대리의 전(傳) 경덕왕릉 남쪽 2기, 고분군 중앙부에 해당하는 탑리 4리 경애원 북쪽의 높이 150.5m의 산정부 고분 1기가 발굴 조사된 바 있으며, 고분군 동단에서는 갖춘 횡혈식 석실 1기가 지표 조사에 의해 알려져 있다. 발굴 과정에서 고분군 일대에 대한 정밀 지표 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종합할 때 금성산 고분군에서 대리리 일대 고분의 내부 구조는 잔자갈을 주로 사용한 적석 목곽 또는 목곽, 탑리리 고분군을 중심으로 한 일대는 할석조의 유사 적석 목곽 또는 수혈식 석곽, 학미리 고분군의 능선 남쪽 일대는 횡혈식 석실분이 주로 구축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금성산 고분군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는 1960년 국립중앙박물관, 1965년 경희대학교 박물관, 1987년 대구대학교 박물관, 1995~1996년 경북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및 고분 발굴 조사를 하였다. 의성은 고대부터 하나의 권역으로 성립되는 등 주요한 역할을 해 왔으나 국립중앙박물관의 몇 곳에 대한 조사를 제외하고는 근래에 지표 조사가 시행된 것이 전부이다. 의성 지역에서는 ‘의성 양식 토기’라고 부를 만한 독특한 형태의 토기가 출토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고학적 조사는 미비한 편이다. 따라서 이러한 의성의 고분 문화의 성격과 그 지역의 집단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1960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발굴 조사한 탑리리 고분군은 대형분으로 하나의 봉토 안에 5기의 덧널이 배치되어 있으며, 조사된 덧널은 지상에서 나무 덧널을 넣고 사방에 돌을 쓰는 ‘유사 돌무지 덧널’이거나 돌무지 덧널이었다. 이 다섯 개의 곽 이외에 봉토의 내분에서는 구획된 범위를 가진 유구가 존재했고 여기에서 유물이 많이 출토되어 이를 또 다른 곽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제사 유구로도 볼 수 있어 앞으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곳에서 출토된 토기는 ‘의성 양식’이라 불릴 수 있을 정도로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경북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한 대리리 3호분은 하나의 봉토 안에 돌무지 덧널 무덤, 덧널 무덤, 유사 돌무지 덧널 무덤의 3기가 순차적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렇게 한 봉토 안에서 서로 다른 3기의 유구가 축조되어 있는 대리리 3호분을 통해 의성 지역에서 묘제가 변천되어 가는 과정을 알 수 있고, 돌무지 덧널 무덤과 삼엽문 대도 등 출토 유물은 신라와의 관계를 시사하고 있다. 그리고 같은 학교에서 발굴한 금성산 고분군의 또 하나의 고분인 학미리 고분군은 횡혈식 석실을 주체로 한 고분군이었다. 1호분의 석실의 규모와 구조, 출토 유물 및 탁월한 입지 등을 고려할 때 의성 지역에서 횡혈식 석실이 도입되는 초기의 양상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주검받침 아래에서 고리 자루 칼, 대형 청동 방울, 쇠솥 등이 출토되었는데 유물은 시신의 매장과 관련된 의례 행위로 주목되는 사항이다.
[조문국과 금성산 고분군]
의성 지역이 조문국의 고지이며 그 중심 읍락이 현재의 금성면 일대라는 것에 대해서 이견이 없다. 금성산 고분군에서 출토되는 토기들은 의성 지역 토기 양식을 가지고 있어 고유의 토기 생산 체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낙동강과 산지라는 자연 지리적 경계를 보완 자료로 활용할 수 있으므로 아래와 같이 금성산 고분군을 중심 세력으로 하는 당시 의성 지역의 범위를 설정 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금성산 고분군이 위치하는 쌍계천 상류의 금성면 일대가 중심 읍락에 해당되며, 북쪽으로 낙동강 본류와 의성군 북동쪽의 높이 700m의 황학산에서 낙동강을 향하여 북서쪽으로 뻗어 내린 높은 산들을 경계로 안동시 내, 임하면, 길안면 등과 격절되어 있으면서 조탑리, 장림리, 후평리 등 다수의 고분군이 분포하는 미천 유역, 남쪽으로는 고곡리 고분군 등이 분포하며, 구미·대구 지역과 경계를 이루는 위천 상류 지역, 서쪽으로는 낙동강을 경계로 서안의 상주 지역과 구분되며 양서리 고분군 등이 분포하는 위천 중하류 지역 등이 그 영역 내의 하위 읍락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범위는 현재 행정 구역 상으로는 의성 지역을 중심으로 군위군와 안동시의 일부가 포함되는 것이다.
[의성 양식 토기로 드러난 금성산 고분군의 독자성]
금성산 고분군에서 출토되는 토기는 다른 지역의 토기와 구분될 정도로 뚜렷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굽다리접시·목항아리·항아리·뚜껑 등이다. 이단 투창 고배의 뚜껑받이는 6세기까지 몸통 바깥으로 기울어진 형태가 지속되며, 일단 투창 고배는 다른 지역에 비해 몸통이 깊고, 굽다리의 아랫부분에는 뚜렷한 돌대가 있다. 그리고 목항아리의 목이 몸통에 비해 상대적으로 길고, 항아리의 몸통에는 돌대가 여러 줄 만들어져 있으며, 뚜껑은 몸체와 드림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은 점 등도 의성 지역 토기의 특징이다. 또한 다른 지역에서 출토되지 않고 오직 의성 지역에서만 출토되는 기종이 있는데, 항아리에 통형 기대와 같은 긴 굽다리가 달린 굽다리 항아리가 그것이다. 의성 지역에서 출토되는 토기는 ‘의성 양식 토기’로 불릴 정도로 지역색이 강하고 또 늦게까지 그 지역색을 유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동일한 양식의 토기 분포권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것은 일정한 정치적·문화적 영역을 나타내므로 의성 양식 토기 분포권을 통해 삼국 시대 의성 지역의 범위를 추정할 수 있다. 의성 양식 토기는 의성읍은 물론이고 그 북쪽으로 현재 안동시에 소속되어 있는 일직면 조탑동 일대를 포함하여 금성면 탑리리부터 미천과 위천을 따라 낙동강에 이르는 수계 일대에서 주로 출토되므로 이를 의성의 범위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범위를 벗어난 지역에서도 적은 양이지만 의성 양식 토기가 출토되었다. 경상북도 상주시 병성동·상주시 신흥리·구미시 낙산동·안동시 태화동·안동시 사의동 등 낙동강 상류를 비롯하여 소백산맥 이북의 청원군 미천리와 동해에 인접한 영덕군 괴시리에서도 출토되었다. 이는 교통의 요지에 자리 잡고 있던 의성 지역 정치 집단이 낙동강 상류 지역을 중심으로 행한 정치·경제적 교류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사항이며, 특히 청원시 미천리에서 출토된 의성 양식 토기는 소백산맥 이북으로의 신라 영토 확장 과정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이다.
[고구려 양식을 띈 금동관의 출토]
금성산 고분군 중 탑리리 고분에서는 전형적인 신라의 관과는 전혀 다른 금동관이 출토되었다. 띠 모양의 테두리 위에 가장자리를 가늘게 자른 후 이를 꼬아서 새의 깃털 모양으로 만든 세움 장식 세 개를 부착하였다. 경주 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된 은관이 이와 비슷한 형태이지만 신라 지역에서는 그 예가 많지 않다.
이처럼 깃털 모양의 세움 장식을 부착한 관과 관식은 고구려 지역에서 오히려 더 많이 출토되었다. 고구려의 수도였던 집안에서 출토되었다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관식은 그 모양이 탑리 고분에서 출토된 것과 매우 유사하다. 따라서 탑리 고분에서 출토된 금동관은 당시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를 비롯하여 신라의 수도인 경주와 지방인 의성의 관계 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금성산 고분군의 관광 자원화]
현대에서 관광 자원의 개발은 매우 중요하다. 의성 지역은 비교적 많은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는 편에 속한다. 의성 탑리리 5층 석탑부터 시작되는 국가 지정 문화재부터 빙계계곡 등의 자연 문화유산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거기에 의성의 뿌리를 찾을 수 있게 해주는 금성산 고분군의 정비와 조문국 박물관의 개관은 늦었지만 다행이라 하겠다.
금성산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전국에 뿔뿔히 흩어져 있는 상태이다. 의성군에서 건립하여 운영 중인 의성 조문국 박물관에서 1960년대부터 시작된 의성 지역의 발굴 조사 결과 드러난 출토 유물을 수집해서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각 발굴 조사 기관과 국립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출토 유물을 한 곳에 모으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금성산 고분군에서 출토된 독특한 금동관부터 시작하여 의성 지역 토기들을 일관되게 정리하여 박물관에서 보여준다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이다. 고분군 정비는 현재 비교적 잘 되어 있는 편이다.
지금 관광의 트렌드는 체험 위주이다. 금성산 고분군이 신라 역사에서 비교적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만큼 이를 활용하여 고분 발굴 조사라든지, 당시 생활 체험 등 의성 지역에서만 할 수 있는 체험 요소를 도입하여 박물관과 결합시킨다면 시너지효과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